[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고교시절 천재로 불렸던 사내는 한껏 주눅이 든 채 10년을 보냈다. 그도 수 없이 스쳐 지나간 천재들처럼 박제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박제의 틀을 깨고 나와 천재성을 다시 폭발시키고 있다. 이 천재는 바로 롯데 자이언츠의 좌투좌타 외야수 김문호(29)다.
5월 중순인 16일 현재 김문호는 타율 0.418 안타 56개로 이 부문 선두를 질주 중이다. 타격감이 쉽사리 식지 않고 있다. 롯데도 2번타자를 맡아 열심히 밥상을 차리고 있는 김문호의 활약에 힘입어 부상자 속출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6위에 올라 치열한 순위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롯데 구단 내부에서는 시즌 개막 무렵만 하더라도 김문호가 이런 맹활약을 해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김문호는 그냥 좌익수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 중 하나였다. 심지어 시범경기 부진으로 개막 엔트리에도 합류하지 못했다. 그런 김문호가 이젠 거인군단에서 가장 뜨겁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별명도 딱히 없던 그는 이제 ‘대타자’로 불린다. 물론 김문호는 조심스럽다. “이제 여유가 생긴 것 같다”라는 말 정도가 김문호 스스로 생각하는 상승세의 큰 이유다.
▲ 천재의 귀환? “난 천재가 아니다”
천재, 김문호를 대변하는 말이다. 덕수정보고(현 덕수고) 시절 김문호는 고교레벨 중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 중 하나였다. 김문호의 또래는 한국 야구를 통틀어서도 야구를 잘 하는 선수들이 많다. 타자만 봐도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 이재원(SK), 민병헌(두산)에 팀 동료인 황재균도 김문호와 동갑내기다. 그 중에서 김문호는 특출났다. 고교 2학년 때인 2004년에는 황금사자기와 화랑기 최우수상을 받았고, 고3시절인 2005년에는 청소년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롯데는 이런 김문호를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전체 17순위)로 지명했다. 계약금도 1억2000만원을 안겼다. 팀 안팎에서 관심과 기대를 받은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프로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2008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큰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김문호는 “다들 천재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나는 그렇게 야구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문고를 나와서 상대적으로 더 조명을 받은 것 같다”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공을 맞히는 재주는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크게 타격폼을 바꾸지 않은 게 야구선수로 살아남은 비결 같다. 만약 홈런을 더 치기 위해 스윙을 크게 바꿨다면 난 지금 고향인 제주도에 있을 것이다.” 올 시즌 김문호의 상승세가 당연한 것은 단점을 보완하기 보다는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성에 있다. 천재성도 천재성이지만, 김문호의 우직함이 빛을 보고 있다.
▲ ‘나라 잃은 표정’ 그만…이젠 활짝 웃는다
김문호가 웃는다. 올 해 들어 부쩍 웃는 얼굴이 많아졌다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김문호의 트레이드마크는 ‘나라 잃은 표정’이었다.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거나, 아쉬운 타격을 한 뒤 짓는 표정이 너무 억울해보였다. “제가 봐도 정말 억울해보였어요.” 김문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포커페이스를 해야지라고 다짐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은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기대를 모았던 신인 시절, 그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위축됐다. 캐치볼을 하다가도 손이 말려버렸다. 프로 데뷔 첫 타석도 긴장한 나머지 다리만 벌벌 떨다 나왔다.
자신감이 사라지니, 나라 잃은 표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좀 친다 싶으면 부상이 찾아왔다. 2013년 5월에는 기습번트 후 1루로 전력질주하다 베이스에 발이 걸려 발목이 돌아가 버리는 큰 부상을 당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지난해 8월에는 햄스트링으로 한 달여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생애 첫 타율 3할(0.306)을 기록했지만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김문호는 “부상을 당하는 것도 실력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올해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고 있다. 기술적인 변화도 줬다. 주로 당겨 치던 김문호는 타구를 골고루 보내기 위해 지난해부터 많은 연습을 했다. 또 타격할 때 중심을 뒤에다 두는 연습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이젠 그를 대타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멘탈이다. 김문호는 “잘 맞다보니 여유도 생겼다. 물론 대타자라는 별명은 과분하다. 하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또 계속 타격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타석에서 자신감이 생긴 것도 그렇다. 장종훈 코치도 “네가 언제부터 잘쳤냐”고 경기 전 긴장을 풀어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개막전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몸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1군에 올라간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리고 6일 사직 SK전에 1군으로 콜업된 그는 멀티히트로 올해 순항을 알렸다. “나에게는 그 때가 개막전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였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김문호가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 “다른 선수를 빛나게 해라” 김문호의 조연론
김문호는 5월 중순까지 유일한 4할 타자로 남아있다. 대기록을 충분히 의식할 수 있다. 그러나 김문호는 “4할 타율은 꿈의 경지다. 욕심 부려서 될 일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앞뒤로 좋은 타자들이 있어 나한테 승부를 많이 해와 운이 좋은 것뿐이다.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군에 합류한 이후 김문호는 한 경기를 빼고 모두 2번타자로 나서고 있다. 2번은 1번타자와 함께 테이블세터를 맡아 찬스를 차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풀타임이다. 김문호는 아직 100경기 이상 소화한 시즌이 없다. 그는 “안타 욕심은 없다. 도루도 (손)아섭이가 많이 뛰고, 또 잘 뛰다보니 내가 도루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며 “테이블 세터이니 밥상을 많이 차려야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풀타임을 뛰면서 100득점을 해야 나도 그렇고 팀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김문호에게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대해서 물었다. 대답은 김문호다웠다. 박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천재의 목표치고는 소박했다. “워낙 (팬들이) 기대를 많이 하셨고 실망 많이 드려서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는 못했다. 그냥 우리 팀에서 꼭 필요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영화로 치면 신스틸러나 명품조연?(웃음) 윤활유 같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홈런 많이 치는 선수는 아니니까. 나보다 잘 하는 선수들을 빛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5월 중순인 16일 현재 김문호는 타율 0.418 안타 56개로 이 부문 선두를 질주 중이다. 타격감이 쉽사리 식지 않고 있다. 롯데도 2번타자를 맡아 열심히 밥상을 차리고 있는 김문호의 활약에 힘입어 부상자 속출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6위에 올라 치열한 순위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롯데 구단 내부에서는 시즌 개막 무렵만 하더라도 김문호가 이런 맹활약을 해주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김문호는 그냥 좌익수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 중 하나였다. 심지어 시범경기 부진으로 개막 엔트리에도 합류하지 못했다. 그런 김문호가 이젠 거인군단에서 가장 뜨겁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별명도 딱히 없던 그는 이제 ‘대타자’로 불린다. 물론 김문호는 조심스럽다. “이제 여유가 생긴 것 같다”라는 말 정도가 김문호 스스로 생각하는 상승세의 큰 이유다.
▲ 천재의 귀환? “난 천재가 아니다”
천재, 김문호를 대변하는 말이다. 덕수정보고(현 덕수고) 시절 김문호는 고교레벨 중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 중 하나였다. 김문호의 또래는 한국 야구를 통틀어서도 야구를 잘 하는 선수들이 많다. 타자만 봐도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 이재원(SK), 민병헌(두산)에 팀 동료인 황재균도 김문호와 동갑내기다. 그 중에서 김문호는 특출났다. 고교 2학년 때인 2004년에는 황금사자기와 화랑기 최우수상을 받았고, 고3시절인 2005년에는 청소년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롯데는 이런 김문호를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전체 17순위)로 지명했다. 계약금도 1억2000만원을 안겼다. 팀 안팎에서 관심과 기대를 받은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프로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2008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큰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김문호는 “다들 천재라고 말씀해 주시는데, 나는 그렇게 야구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문고를 나와서 상대적으로 더 조명을 받은 것 같다”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공을 맞히는 재주는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크게 타격폼을 바꾸지 않은 게 야구선수로 살아남은 비결 같다. 만약 홈런을 더 치기 위해 스윙을 크게 바꿨다면 난 지금 고향인 제주도에 있을 것이다.” 올 시즌 김문호의 상승세가 당연한 것은 단점을 보완하기 보다는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성에 있다. 천재성도 천재성이지만, 김문호의 우직함이 빛을 보고 있다.
▲ ‘나라 잃은 표정’ 그만…이젠 활짝 웃는다
김문호가 웃는다. 올 해 들어 부쩍 웃는 얼굴이 많아졌다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김문호의 트레이드마크는 ‘나라 잃은 표정’이었다.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거나, 아쉬운 타격을 한 뒤 짓는 표정이 너무 억울해보였다. “제가 봐도 정말 억울해보였어요.” 김문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웃으면서 “포커페이스를 해야지라고 다짐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은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기대를 모았던 신인 시절, 그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스프링캠프에서부터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위축됐다. 캐치볼을 하다가도 손이 말려버렸다. 프로 데뷔 첫 타석도 긴장한 나머지 다리만 벌벌 떨다 나왔다.
자신감이 사라지니, 나라 잃은 표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좀 친다 싶으면 부상이 찾아왔다. 2013년 5월에는 기습번트 후 1루로 전력질주하다 베이스에 발이 걸려 발목이 돌아가 버리는 큰 부상을 당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지난해 8월에는 햄스트링으로 한 달여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생애 첫 타율 3할(0.306)을 기록했지만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김문호는 “부상을 당하는 것도 실력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올해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고 있다. 기술적인 변화도 줬다. 주로 당겨 치던 김문호는 타구를 골고루 보내기 위해 지난해부터 많은 연습을 했다. 또 타격할 때 중심을 뒤에다 두는 연습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이젠 그를 대타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멘탈이다. 김문호는 “잘 맞다보니 여유도 생겼다. 물론 대타자라는 별명은 과분하다. 하지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또 계속 타격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타석에서 자신감이 생긴 것도 그렇다. 장종훈 코치도 “네가 언제부터 잘쳤냐”고 경기 전 긴장을 풀어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개막전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몸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1군에 올라간다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리고 6일 사직 SK전에 1군으로 콜업된 그는 멀티히트로 올해 순항을 알렸다. “나에게는 그 때가 개막전이었다. 마지막이라는 각오였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김문호가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6회초 2사. 롯데 김문호가 3루타를 날리고 있다. 사진(잠실)=천정환 기자
▲ “다른 선수를 빛나게 해라” 김문호의 조연론
김문호는 5월 중순까지 유일한 4할 타자로 남아있다. 대기록을 충분히 의식할 수 있다. 그러나 김문호는 “4할 타율은 꿈의 경지다. 욕심 부려서 될 일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앞뒤로 좋은 타자들이 있어 나한테 승부를 많이 해와 운이 좋은 것뿐이다.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군에 합류한 이후 김문호는 한 경기를 빼고 모두 2번타자로 나서고 있다. 2번은 1번타자와 함께 테이블세터를 맡아 찬스를 차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풀타임이다. 김문호는 아직 100경기 이상 소화한 시즌이 없다. 그는 “안타 욕심은 없다. 도루도 (손)아섭이가 많이 뛰고, 또 잘 뛰다보니 내가 도루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며 “테이블 세터이니 밥상을 많이 차려야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풀타임을 뛰면서 100득점을 해야 나도 그렇고 팀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김문호에게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대해서 물었다. 대답은 김문호다웠다. 박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천재의 목표치고는 소박했다. “워낙 (팬들이) 기대를 많이 하셨고 실망 많이 드려서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는 못했다. 그냥 우리 팀에서 꼭 필요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영화로 치면 신스틸러나 명품조연?(웃음) 윤활유 같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홈런 많이 치는 선수는 아니니까. 나보다 잘 하는 선수들을 빛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