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잊을 수 없는 홈런이죠. 정말 멋진 전역 선물이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잘 알 것이다. 전역이 7시간 정도 남았을 때의 기분을. 하지만 하주석(21·상무)의 기분은 더 남달라 보였다. 전역을 앞두고 참가한 대만 타이중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일전에서 9회말 2아웃에 대타로 나서 역전 끝내기 홈런을 때리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21일 인천공항을 통해 등장한 하주석은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정말 짜릿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은 16일 홈팀 대만과의 경기에서 8-2로 이기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모두 콜드게임으로 이기고 만난 19일 일본전이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일본은 이 대회를 5연패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은 일본에 먼저 점수를 내주고 0-1로 끌려 다니다 9회말 선두타자 이우성(21)이 안타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박세혁(25)의 희생번트로 1사 2루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원석이 삼진으로 물러나며 2사 2루로 상황이 바뀌었다. 오선진(26·이상 상무)의 타석이었지만 윤영환 대표팀 감독은 하주석을 대타로 내세웠다.
하주석은 “준비는 하고 있었다. 대만전 이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대타로 대기하고 있었다. 우완투수라 내가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2아웃이라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고, 어떻게든 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4구까지 잘 참은 하주석은 5구째 들어온 슬라이더에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타구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우측담장으로 넘어갔다. 역전 끝내기 투런홈런. 하주석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했다. 속구를 노렸는데, 슬라이더가 속구 타이밍에 걸렸다. 아마 속구였다면 홈런이 아니었을지 모른다(웃음).” 하주석의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은 21일 열린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와 상관 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1999년 서울 대회 이후 16년 만의 우승이었다.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7개의 홈런(타율 3할6푼6리, 62타점, 42도루)을 기록한 하주석은 “지금까지 프로에서 친 홈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홈런이다. 아시아선수권 한일전 끝내기 홈런이라...다시 생각해도 손맛이 좋았다”며 “전역 전에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주석은 22일 전역한다. 전역 전날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금의환향한 셈이다.
잊을 수 없는 전역 선물이기도 했지만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하주석은 고교 최고의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영민타격상’을 고교 1학년 때 받으며 각광을 받았고, 2012년 신일고를 졸업하고 전체 1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면서 대형 신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하주석은 성장통을 겪었다. 2012~13시즌 75경기에 출전해 타율이 1할6푼7리에 그쳤다. 기대가 컸기 때문에 하주석에 대한 실망스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래서 군입대를 선택했다. 2014시즌을 앞두고 하주석은 상무 입대에 자원했다. 1군 무대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주석은 “작년 겨울에 특히 많이 연구했고, 많은 걸 바꿨다”며 “방망이 잡는 법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주석 스스로도 인정하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멘탈이었다. 그는 “많이 간절했다. 그래서 생각도 많았다. 군대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며 “나 자신이 성숙해졌다는 기분이 드니 플레이가 달라졌다. 야구를 임하는 자세가 어렸을 때보다는 더 진지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귀국 후 경북 문경 상무로 돌아간 하주석은 22일 오전 전역신고를 하고 민간인이 된다. 다시 한화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하주석은 “아직 정확한 일정을 못 받았는데, 바로 인사를 드리러 갈 생각이다”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풋풋함은 없었다. 적어도 하주석은 풋내기 딱지를 떼버렸다. “한화에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꼭 기회를 잡겠다.” 하주석은 단단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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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잘 알 것이다. 전역이 7시간 정도 남았을 때의 기분을. 하지만 하주석(21·상무)의 기분은 더 남달라 보였다. 전역을 앞두고 참가한 대만 타이중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일전에서 9회말 2아웃에 대타로 나서 역전 끝내기 홈런을 때리며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21일 인천공항을 통해 등장한 하주석은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정말 짜릿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은 16일 홈팀 대만과의 경기에서 8-2로 이기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모두 콜드게임으로 이기고 만난 19일 일본전이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일본은 이 대회를 5연패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은 일본에 먼저 점수를 내주고 0-1로 끌려 다니다 9회말 선두타자 이우성(21)이 안타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박세혁(25)의 희생번트로 1사 2루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원석이 삼진으로 물러나며 2사 2루로 상황이 바뀌었다. 오선진(26·이상 상무)의 타석이었지만 윤영환 대표팀 감독은 하주석을 대타로 내세웠다.
하주석은 “준비는 하고 있었다. 대만전 이후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대타로 대기하고 있었다. 우완투수라 내가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2아웃이라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고, 어떻게든 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4구까지 잘 참은 하주석은 5구째 들어온 슬라이더에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타구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우측담장으로 넘어갔다. 역전 끝내기 투런홈런. 하주석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했다. 속구를 노렸는데, 슬라이더가 속구 타이밍에 걸렸다. 아마 속구였다면 홈런이 아니었을지 모른다(웃음).” 하주석의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은 21일 열린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와 상관 없이 우승을 확정지었다. 1999년 서울 대회 이후 16년 만의 우승이었다.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7개의 홈런(타율 3할6푼6리, 62타점, 42도루)을 기록한 하주석은 “지금까지 프로에서 친 홈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홈런이다. 아시아선수권 한일전 끝내기 홈런이라...다시 생각해도 손맛이 좋았다”며 “전역 전에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주석은 22일 전역한다. 전역 전날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금의환향한 셈이다.
잊을 수 없는 전역 선물이기도 했지만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하주석은 고교 최고의 타자에게 주어지는 ‘이영민타격상’을 고교 1학년 때 받으며 각광을 받았고, 2012년 신일고를 졸업하고 전체 1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면서 대형 신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하주석은 성장통을 겪었다. 2012~13시즌 75경기에 출전해 타율이 1할6푼7리에 그쳤다. 기대가 컸기 때문에 하주석에 대한 실망스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래서 군입대를 선택했다. 2014시즌을 앞두고 하주석은 상무 입대에 자원했다. 1군 무대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주석은 “작년 겨울에 특히 많이 연구했고, 많은 걸 바꿨다”며 “방망이 잡는 법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주석 스스로도 인정하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멘탈이었다. 그는 “많이 간절했다. 그래서 생각도 많았다. 군대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며 “나 자신이 성숙해졌다는 기분이 드니 플레이가 달라졌다. 야구를 임하는 자세가 어렸을 때보다는 더 진지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귀국 후 경북 문경 상무로 돌아간 하주석은 22일 오전 전역신고를 하고 민간인이 된다. 다시 한화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하주석은 “아직 정확한 일정을 못 받았는데, 바로 인사를 드리러 갈 생각이다”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풋풋함은 없었다. 적어도 하주석은 풋내기 딱지를 떼버렸다. “한화에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최선을 다해서 꼭 기회를 잡겠다.” 하주석은 단단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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