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인천) 이상철 기자] 마지막 올림픽 역도 남자 금메달리스트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시안게임이었다. 그렇기에 각별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역사(力士)’ 사재혁(29·제주도청)의 목에는 메달이 없었으며 시상대 위에 서지 못했다. 경기를 끝난 뒤에도 좀처럼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메달이 그의 결과를 결정짓는 건 아니었다. 다시 플랫홈으로 돌아와 역기를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 ‘인간승리’였다. 오뚝이 역사는 불사조가 되었다.
사재혁은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77kg급에서 깜짝 금메달을 땄다. ‘역도 천재’로 불리며 잠재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그가 세계무대를 호령한 순간이었다.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전병관 이후 16년 만에 나온 역도 금메달이었다.
1년 뒤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는 용상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승승장구했다. 그의 미래는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하지만 사재혁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늘의 시샘 탓인지 부상 악령이 찾아왔다.
차가운 수술대에도 참 많이 올랐다. 어깨, 무릎, 손목, 팔꿈치 등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부상으로 불참했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경기 도중 오른 팔꿈치 탈구의 큰 부상을 입었다. 수술만 7시간이 걸렸다. 거기다 또 한 차례 수술을 했다. 7번째 수술이었다.
다들 끝났다고 했다. 더 이상 바벨을 들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는 끝이었다. 하지만 사재혁에겐 끝이 아니었다. 수술대는 차가웠지만 그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체급도 85kg으로 올리며 재기를 꿈꿨고, 마침내 생애 첫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았다.
‘오뚝이 역사’는 의지의 사나이였다. 단순히 출전이 목표가 아니었다. 입상도 아니었다. 그가 바라본 곳은 오직 정상이었다. “나를 우습게 봤던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던 사재혁의 포부는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는 죽지 않았다. 전략도 간단했다. 정면 돌파였다. 인상 1차시기로 160kg을 신청했다가 우승 경쟁을 펼칠 로스타미(이란)의 166kg 시도를 보고 5kg을 올렸다. 힘찬 기합과 함께 플랫홈에 오른 사재혁은 가뿐히 165kg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2차시기로 168kg을 신청했다가 3kg 무거운 171kg으로 변경했다. 이번 역시 ‘성공’이었다. 그가 성공하자, 경기장은 열광모드로 바뀌었다. 관중들은 “사재혁”을 연호했다.
171kg은 한국신기록이었다. 11년 만에 한국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재혁이 평소 훈련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무게인데 단번에 들어올렸다.
사재혁의 연속 성공에 긴장한 건 로스마티였다. 사재혁의 체중은 82.66kg으로 남자 85kg급에 출전한 8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가벼웠다. 로스마티(84.66kg)는 사재혁보다 2kg이 더 무거웠다. 사재혁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야 했다.
로스마티는 인상 3차시기에서 172kg을 기록하며 사재혁에 앞섰다. 사재혁에겐 한 번 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기권. 인상 3차시기를 포기했다. 인상에선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용상은 그가 가장 자신있었다. 훈련에서 220kg까지 성공했다. 이날 금메달을 딴 티안타오(중국)의 용상 기록은 218kg. 사재혁이 평소대로 했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그러나 사재혁이 밝힌대로 더 욕심을 부린 탓일까.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 몸을 늦게 풀었기 때문일까. 용상에서 클린 후 저크 동작에서 다리 힘이 빠지면서 세 번의 도전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어쩌면 허무한 탈락이었다.
하지만 사재혁에겐 끝이 아닌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힘겨운 시기를 넘기면서 사재혁은 스스로 경쟁력을 보여줬다. 앞으로 다분히 노력하고 훈련하면, 온전히 일어설 수 있다.
사재혁도 의지를 다졌다. 그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국제대회에 오랜만에 출전했는데 내 경쟁력을 보여줬다. 인상 171kg을 성공했다는 의미도 크다. 앞으로 체중을 더 키우고 훈련을 매진하면 더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재혁은 향후 계획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운동을 계속 할 수도 있고 그만둘 수도 있다고 했다. 현역 연장과 은퇴의 기로에 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더 할 수 있다는 열정을 보였다.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올림픽 등 그가 나가고 싶은 대회는 여전히 많다. “올림픽을 삼세번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불사조는 해맑게 웃었다.
[rok1954@maekyung.com]
어쩌면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역사(力士)’ 사재혁(29·제주도청)의 목에는 메달이 없었으며 시상대 위에 서지 못했다. 경기를 끝난 뒤에도 좀처럼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메달이 그의 결과를 결정짓는 건 아니었다. 다시 플랫홈으로 돌아와 역기를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 ‘인간승리’였다. 오뚝이 역사는 불사조가 되었다.
사재혁은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77kg급에서 깜짝 금메달을 땄다. ‘역도 천재’로 불리며 잠재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그가 세계무대를 호령한 순간이었다.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전병관 이후 16년 만에 나온 역도 금메달이었다.
1년 뒤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는 용상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승승장구했다. 그의 미래는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하지만 사재혁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늘의 시샘 탓인지 부상 악령이 찾아왔다.
차가운 수술대에도 참 많이 올랐다. 어깨, 무릎, 손목, 팔꿈치 등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부상으로 불참했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경기 도중 오른 팔꿈치 탈구의 큰 부상을 입었다. 수술만 7시간이 걸렸다. 거기다 또 한 차례 수술을 했다. 7번째 수술이었다.
다들 끝났다고 했다. 더 이상 바벨을 들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는 끝이었다. 하지만 사재혁에겐 끝이 아니었다. 수술대는 차가웠지만 그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체급도 85kg으로 올리며 재기를 꿈꿨고, 마침내 생애 첫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았다.
‘오뚝이 역사’는 의지의 사나이였다. 단순히 출전이 목표가 아니었다. 입상도 아니었다. 그가 바라본 곳은 오직 정상이었다. “나를 우습게 봤던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던 사재혁의 포부는 듣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는 죽지 않았다. 전략도 간단했다. 정면 돌파였다. 인상 1차시기로 160kg을 신청했다가 우승 경쟁을 펼칠 로스타미(이란)의 166kg 시도를 보고 5kg을 올렸다. 힘찬 기합과 함께 플랫홈에 오른 사재혁은 가뿐히 165kg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2차시기로 168kg을 신청했다가 3kg 무거운 171kg으로 변경했다. 이번 역시 ‘성공’이었다. 그가 성공하자, 경기장은 열광모드로 바뀌었다. 관중들은 “사재혁”을 연호했다.
171kg은 한국신기록이었다. 11년 만에 한국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재혁이 평소 훈련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무게인데 단번에 들어올렸다.
사재혁의 연속 성공에 긴장한 건 로스마티였다. 사재혁의 체중은 82.66kg으로 남자 85kg급에 출전한 8명의 선수 가운데 가장 가벼웠다. 로스마티(84.66kg)는 사재혁보다 2kg이 더 무거웠다. 사재혁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야 했다.
로스마티는 인상 3차시기에서 172kg을 기록하며 사재혁에 앞섰다. 사재혁에겐 한 번 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기권. 인상 3차시기를 포기했다. 인상에선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용상은 그가 가장 자신있었다. 훈련에서 220kg까지 성공했다. 이날 금메달을 딴 티안타오(중국)의 용상 기록은 218kg. 사재혁이 평소대로 했다면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그러나 사재혁이 밝힌대로 더 욕심을 부린 탓일까. 아니면 분위기에 휩쓸려 몸을 늦게 풀었기 때문일까. 용상에서 클린 후 저크 동작에서 다리 힘이 빠지면서 세 번의 도전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어쩌면 허무한 탈락이었다.
하지만 사재혁에겐 끝이 아닌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힘겨운 시기를 넘기면서 사재혁은 스스로 경쟁력을 보여줬다. 앞으로 다분히 노력하고 훈련하면, 온전히 일어설 수 있다.
사재혁도 의지를 다졌다. 그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국제대회에 오랜만에 출전했는데 내 경쟁력을 보여줬다. 인상 171kg을 성공했다는 의미도 크다. 앞으로 체중을 더 키우고 훈련을 매진하면 더 좋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재혁은 향후 계획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운동을 계속 할 수도 있고 그만둘 수도 있다고 했다. 현역 연장과 은퇴의 기로에 선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더 할 수 있다는 열정을 보였다. 세계역도선수권대회, 올림픽 등 그가 나가고 싶은 대회는 여전히 많다. “올림픽을 삼세번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불사조는 해맑게 웃었다.
[rok1954@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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