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일본, 효고) 김원익 기자]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은 한국에 비해서 프로야구의 태동이 46년 앞선다. 1936년 출범한 일본 프로야구와 1982년 프로팀이 생겨난 한국야구 사이에는 그 간극 이상의 차이가 있다.
고교 야구팀 숫자 4000개와, 세계 프로스포츠 관중동원 2위에 해당하는 일본프로야구(NPB) 연관중 총 2137만226명이라는 저변은 일본야구의 근간. 동시에 야구를 국기(國伎)로 숭앙하고 아끼는 일본 국민들의 인식은 ‘야구왕국 일본’을 만든 배경이다.
▲ 거포형 용병 선호, 호타준족 용병은 드물다
일본 프로야구의 1군 외국인선수 등록 인원은 4명이다. 한 경기에 4명이 모두 출전할 수 있지만, 야수나 투수, 한쪽만으로 4명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투수 혹은 야수의 등록 제한은 3명이다. 4명 중 최소 1명은 타자 혹은 투수로 채워야 한다는 뜻. 보통 2명의 투수와 2명의 타자를 1군에 등록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 2군 등록은 무제한이다.
뚜렷한 경향은 거포형 용병과 투수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비단 1,2년 사이의 일이 아니라 오랜기간 그랬지만 최근 일본 자국 거포 기근 현상이 이런 경향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야구는 역대 유례없을 정도의 투고타저에 시달렸다. 반발력이 유난히 약한 일본 미즈노사에서 제작한 공인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투고타저 현상은 관중하락을 불러왔다. 팬들이 홈런 없는 야구에 식상함을 느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홈런’을 야구의 최고의 볼거리 중 하나로 여기는 일본은 ‘지키는 야구’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화끈한 야구’를 더 선호한다. 구단은 결국 승리라는 지상과제를 충족시키면서 팬들을 만족시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난제를 풀어줄 열쇠를 용병으로 본 것. 대부분의 구단들은 보통 1군에 1명 이상 혹은 2명 이상의 용병타자들을 엔트리에 포함시킨다. 투수 자원과 교타자형 타자가 풍부한 일본의 야구저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자국내 타자가 풀 수 없는 화끈한 홈런포에 대한 대리만족을 용병에게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요코하마의 공격야구와 성적상승, 관중동원 증가는 한 용병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지난해까지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4년간 111개의 홈런포를 쏘아올렸던 블랑코의 영입은 신의 한수가 됐다. 블랑코는 현재 19홈런으로 양대리그 독보적인 홈런 1위에 올라 있다. 올해까지 통산 타율이 2할6푼9리로 정확도에 문제가 있고, 지난 2년간 174경기 30홈런에 그친 ‘퇴물용병’의 반전이었다. 한국이라면 사실 이미 퇴출됐어도 마땅한 선수였던 셈. 블랑코의 부활은 일본야구의 뚜렷한 ‘거포 선호’와 넉넉한 외국인 보유의 장점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앞서 일본야구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지난해까지 미국 메이저리그 통산 17년간 홈런 434개를 쏘아올린 앤드류 존스가 라쿠텐으로 이적한 것이 큰 화제를 모았다.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434개는 일본에 진출한 역대 외국인 타자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앤드류 존스는 현재 타율 2할4푼8리 6홈런 19타점이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입단 당시부터 지난해 뉴욕 양키스에서 1할대 타율에 그쳤고 기량이 뚜렷한 하락세라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라쿠텐의 장타력 부재 해결을 위해 초대형 용병의 영입을 원했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요구가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퇴물 선수라도 메이저리그 출신의 거포라면 좋다’는 것이 비단 앤드류 존스의 사례만은 아니다. 메이저그 경력이 있는 정확도 대신 힘만 가진 반쪽짜리 거포들이 일본야구를 종착지로 선택했다가, 성공하거나 혹은 사라지는 것이 일본프로야구 용병사였다.
“정근우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선수다. 내 개인적으로는 한국 최고의 야수라고 생각하지만 우리팀에서 영입은 힘들 것 같다.”
이대호의 소속팀 오릭스 버펄로스의 스카우트 관계자는 MK스포츠의 일본 현지 취재 중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결국 거포용병을 선호하는 일본의 경향과도 맥이 닿아있는 부분이다.
한국은 이종범(은퇴)을 시작으로 이병규(LG), 이승엽(삼성). 김태균(한화), 이대호(오릭스)라는 대표타자들이 일본으로 진출했다. 그 중 이승엽, 김태균, 이대호는 거포형 타자에 가까웠고, 이종범과 이병규는 정확도와 빠른발을 겸비한 호타준족형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호타준족형 타자들의 일본 진출은 어려울 전망이다. 일본 내에서도 홈런타자로 거듭난 이승엽의 대성공 이후 한국 거포타자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미국이나 남미 용병이 할 수 있었던 역할을 한국 타자들이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치가 높아졌다.
오릭스의 관계자는 한국 타자 중 가장 주목하고 있는 타자로 단연 정근우를 꼽았다. 오랜기간 국제대회와 국내대회를 지켜보며 내린 결론. 정근우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희망 기사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정근우 선수는 정말 좋은 타자이며 야수다. 그러나 일본내에서도 정근우 선수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형이 많다.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 ‘타입’과 ‘롤’의 문제다. 일본에서 최근 거포용병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비실력과 야구센스가 출중한 교타자형은 일본내에서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타자가 많다는 설명.
그렇다면 최근 일본 내에서 가장 핫한 국내타자들은 누구일까. 오릭스의 관계자는 “지난해 홈런왕 박병호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FA자격 취득이 한참 남은 걸로 안다. 영입은 어렵지만 강한 파워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또한 최정에 대해서도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수비도 타격도 굉장히 훌륭한 선수다. 내년 시즌을 마쳐야 FA가 되는걸로 안다”며 해외이적 의지가 있는지를 물어오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의 시각도 거포에 집중됐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 아사히 신문, 닛칸스포츠 등의 복수 매체의 기자들도 일본 내에서 국내 타자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선수로 ‘박병호’의 이름을 먼저 언급했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로 뽑히지 못했던 터라 지명도 면에서 다소 의외의 결과였다. 그러나 31홈런을 쏘아올리며 홈런왕에 오른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일본야구는 센트럴리그가 3년 연속으로 관중이 하락했고, 양대 리그 모두 뚜렷한 관중하락폭을 기록하는 등 인기하락에 고심했다. 홈런이 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들이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동시에 외국인 선수 제한이 2명과 4명, 2군까지 포함하면 큰 차이가 있는데다 경제적인 규모상 수준급 타자 용병을 구하기 힘든 한국에 일본의 사례를 적용시키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팬들을 위한 야구’를 생각하는 일본의 고심은 한 번 주목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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