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1인 2역 피해자"…이선균 협박해 3억 뜯은 실장의 변론

"이씨에 공갈친 게 아니라 3억 전달자 속여 돈 더 받았을 뿐"

지난 25일 인천지법 411호 법정에는 연녹색 수의를 입은 두 여성이 변호인들 사이에서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습니다. 배우 이선균씨를 협박해 각자 3억 원과 5,000만 원씩을 뜯은 공갈 혐의로 기소된 유흥업소 실장 A(30·여)씨와 전직 영화배우 B(29·여)씨였습니다.

A씨는 지난해 9월 평소 친하게 지낸 이 씨에게 연락해 "휴대전화가 해킹돼 협박받고 있는데 입막음용으로 돈이 필요하다"며 3억 원을 뜯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B씨도 A씨와 별도로 이씨를 협박해 5,000만 원을 뜯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들에게 모두 3억 5,000만 원을 뜯긴 이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지난해 12월 숨졌습니다.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하자 A씨의 변호인은 미리 준비한 프레젠테이션(PPT) 자료를 제시하며 "공동 피고인인 B씨가 A씨를 가스라이팅(심리 지배)해 돈을 받아내게 했다. 과거에 많은 범죄를 저지른 B씨가 A씨를 조정하고 협박한 것"이라 최후변론했습니다.

B씨는 교도소에서 알게 된 A씨와 2022년 9월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며 친하게 지낸 인물입니다. A씨는 같은 날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던 사이였다"고 B씨를 설명했는데, 일거수일투족에는 마약을 투약한 A씨의 과거와 그가 유명 연예인들과 친하게 지낸 사실까지 포함됐습니다.

B씨는 A씨의 은밀한 사생활을 알게 되자 가면을 썼습니다. 뒤에서는 '해킹범' 행세를 하면서 "이 씨와의 관계를 폭로하겠다"며 A씨에게 1억원을 요구했고, 앞에서는 A씨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협박받는 상황에서 대처법을 조언한 것입니다. A씨는 협박범이 B씨가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지만 확신하진 못했습니다. 결국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구속돼 구치소에 있으면서 뒤늦게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했습니다.

A씨와 똑같이 징역 7년을 구형받은 B씨는 그동안 재판에서 혐의를 사실상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은 수사 중반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실대로 진술했다"며 "수감생활을 하면서 반성하고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A씨는 B씨의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 이 씨를 상대로 공갈을 친 게 아니라 자신에게 3억 원을 전달한 이 씨의 지인을 속여 돈을 더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최후변론에서 "오빠(이 씨)를 지키기 위해 돈을 협박범에게 빨리 주고 끝내고 싶었다"며 " 제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오빠를 협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사가 "돈을 받아내려고 일부러 피해자(이 씨)와 통화하면서 마약 관련 내용을 언급하고 녹음한 것 아니냐"고 묻자 "아니다"라며 "협박범(B씨)이 제 휴대전화를 해킹해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고 오빠를 대비시키려고 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는 또 "애초 협박범이 1억 원을 요구했지만, B씨가 '1억 원이 아니라 3억 원을 이 씨에게 달라고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해 실제로 그렇게 했다"며 "오빠에게 (돈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낼 때도 B씨의 조언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자신의 변호인이 "사망한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정말 이렇게까지 일이 크게 될 줄 몰랐다"며 "후회하고 미안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오늘(30일) "A씨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B씨한테서 받은 협박을 강조해 모든 혐의를 떠넘기는 전략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자신이 받은 3억 원도 이 씨가 아닌 이씨의 지인이 준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 역시 돈을 준 이 씨의 지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검찰 공소사실은 부인하고 공소장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다른 죄는 인정해 무죄를 받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와 B씨의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9일 인천지법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김경태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ragonmoon20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