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오지로 발령이 났는데 특정 노동조합원 비율이 높다면 이는 차별일까요 아닐까요?
이번 '법원 앞 카페'에서 다룰 사건은 KT에서 일어났던 노동조합원 차별 발령 논란입니다.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오지 발령"
때는 지난 2014년입니다. 당시 KT는 2013년 3,900억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2014년 1분기에도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58% 감소한 1,520억 원을 기록해 410억 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KT는 적극적인 인력감축을 시작했고 당시 직원 32,000여 명 중 8,000여 명이 명예퇴직했습니다.
지난 2018년 12월 27일 KT노동인권센터와 KT전국민주동지회가 서울중앙지법에 256명의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남은 직원 중에서도 5,300명 가량이 사업 폐지 등으로 보직을 못 받을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에 인력 재배치 과정이 이뤄졌고 그 결과 1,201명이라는 잔류 인력이 남았습니다. KT는 이들을 최근 3년간 인사고과와 과거 징계전력, 평소 근무태도 등을 종합해 고득점 순으로 910명을 지역본부에 배치합니다.
이제 남은 인원은 291명, KT는 이들을 '업무지원단'을 신설해 배치했습니다. 주 업무는 케이블 운영실태 점검과 무선품질 측정, 임대단말기 회수 업무, 상품판매 대행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문제가 된건 이 업무지원단입니다. 지원단에 배치된 직원들은 자신들이 하위평가자로서 사실상 정리해고 대상자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논란이 된 건 업무지원단에 발령난 직원 중 특정 노동조합원 비율이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전체 직원 중 'KT민주동지회' 회원은 약 100명, 'KT새노동조합' 조합원은 약 30명 정도로 각각 전체 직원의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업무지원단에 배치된 291명에 민주동지회원은 78명, 새노조 조합원은 16명이나 포함됐습니다. 민주동지회원의 3/4, 새노조원의 절반이 포함된 거고 업무지원단 직원 중 1/3 가량이 전체 직원의 1%도 안 되는 민주동지회원과 새노조원으로 채워진 거죠.
이를 두고 해당 직원들은 차별적 인사발령이라고 주장했고, 일부 직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인권위 "노조라고 차별한 것 맞다"
직원들은 인권위에 "업무지원단 발령으로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오지의 지점에 배치되고 지점 직원들과 근무공간을 분리해 격리시켰으며, 협력업체 직원들이 수행하던 모뎀회수 업무와 불량회선 점검업무 등을 수행하게 하는 등 적절한 업무분장을 하지 않고 있으며, 전보신청도 받아주지 않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KT 측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발령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악화된 경영환경을 타개하려 인적조직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발령한 것이며 어떠한 불이익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직원들 중 누가 민주동지회 등 회원인지도 파악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령 단계에서 소속을 알 수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인권위 판단은 어땠을까요? 지난 2021년 8월 인권위는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이 맞다고 보고 "업무지원단 발령 취소 등 적절한 구제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인권위는 먼저 '누가 민주동지회 등 회원인지 모른다'는 주장을 거짓으로 봤습니다. 근거로 든 게 이른바 2005년 KT가 작성한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방안' 문건이었습니다. 이 문건에 이미 업무지원단 직원들 중 민주동지회원이 '민동'으로 적혀 있었던 만큼 몰랐을리가 없다는 겁니다.
이어 인권위는 불이익이 없다는 KT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퇴출대상', '잉여인력' 같은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만큼 '정리해고 대상자'로 포함된 정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조치로 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또 발령 뒤 업무 환경 역시 불리한 대우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인권위는 노조 활동과 업무지원단 발령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봤습니다. 정당한 인사고과 평가였다는 KT의 주장이 맞다면 인력재배치가 안된 1,201명 중 업무지원단 발령자 291명을 가린 평가 내역을 제출하면 되는데 이를 제출하지 않고 말로만 "발령자들이 평가 결과 후순위였다"라고만 주장한다는 겁니다.
특히 하위권으로 분류돼 업무지원단으로 발영난 직원 중 한 민주동지회원은 업무실적이 우수해 표창을 받기도 했고 평가자들로부터 '영업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받은 점을 보면 발령 기준이 공정했는지 설득력이 없다고 봤습니다.
인권위 결정 뒤집은 법원 "합리적 이유 인정"
결국 KT가 특정 노조원들을 겨냥해 불리한 대우를 했다는 인권위 판단이 나오자 KT 측은 반발했습니다. KT 측은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죠.
서울가정법원·서울행정법원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발령으로부터 6년, 인권위 결정으로부터 2년이 흐른 지난 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2부(신명희 부장판사)는 "'KT의 업무지원단 발령 취소 등 적절한 구제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는 부분을 취소한다"고 선고했습니다. 인권위 결정을 뒤집은 겁니다.
일단 재판부는 업무지원단으로 발령난 게 불리한 대우를 받은 거라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업무지원단 발령을 희망하지 않은 점, 기존 업무와 다른 업무를 수행한 점, 별개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점 등이 모두 불리한 대우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은 인권위와 같은 판단을 내린 겁니다.
또 민주동지회와 새노조 등 가입 사실을 가지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만약 해당 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발령을 했다면 불리한 대우를 한 것에 해당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재판부는 실제 업무지원단 발령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본 설립이래 최대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구조조정 과정에 잘못이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는 겁니다.
인사권자로서 잔류인력 1,201명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 업무지원단 발령자를 선정해야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인사고과, 징계전력, 근무태도를 기준으로 삼은 건 나름대로 합리성과 공정성을 갖춘 것으로서 인사권자 재량권 내로 보이고 이보다 명백히 나은 대안이 있었던 걸로 보이지 않는다.
- 1심 재판부
- 1심 재판부
재판 상대방이었던 인권위 측은 인권위 결정에도 언급된 KT의 과거 부진인력 관리 문건을 들어 인사고과 불이익을 준 이력이 있는 점과 업무지원단 발령자 중 지나치게 높은 노조원 비율을 언급하며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부분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부당한 인사발령을 내렸다고 이번에도 똑같이 했다는 근거도, 노조원 비율만으로 부당한 인사발령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겁니다.
KT가 2009년 부진인력 대상자에게 부당하게 낮은 인사고과 점수를 부여한 사실이 인정된 바 있으나 2010년 이후에도 위와 같은 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다른 자료가 없다.
직원들이 업무지원단 발령자와 민주동지회 명단을 임의로 정리한 자료는 출처인 원본 자료를 확인할 수 없는 바 숫자 산정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다.
- 1심 재판부
직원들이 업무지원단 발령자와 민주동지회 명단을 임의로 정리한 자료는 출처인 원본 자료를 확인할 수 없는 바 숫자 산정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다.
- 1심 재판부
'인사평가 자료 없음' 두고 상반된 판단
눈에 띄는 점은 '인사평가 자료가 없다'는 KT의 주장에 대해 인권위와 법원이 정반대 판단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앞서 인권위는 자료가 없다는 점은 곧 인사평가가 합리적이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없는 만큼 노조원임을 이유로 부당한 발령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재판부는 "어떠한 이유로 낮은 인사고과 점수를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전보발령 대상자 중 민주동지회원 비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낮은 인사고과 점수를 받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인사평가 자료가 없으면 오히려 부당한 발령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보수적 판단을 내린 거죠.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항소심으로 넘어가게 되면 결국 어떤 기준으로 인사평가를 했느냐에 대한 근거 유무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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