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 모 씨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대전 현대아울렛으로 향했습니다. 아울렛이 문을 열기 전까지 일을 마치려면 일찍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아울렛은 공무원을 퇴직한 뒤 얻은 일터였습니다. 은퇴를 했어도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를 아울렛으로 이끌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30대 채 씨는 생계를 위해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울렛에서 시설관리직을 맡았고 밤샘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 26일 아침 현대 아울렛 지하 1층. 주차장과 하역장, 방재실, 휴게실 등이 있는 이곳에서 누군가는 개점 시간에 맞춰 분주하게 일을 시작했고, 다른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개점을 3시간쯤 남긴 7시 40분쯤, 하역장엔 배송업체 직원이 타고 온 화물차 한 대가 주차돼 있었고, 차 양옆으로 폐지와 상자가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평소와 같은 하루가 될 것 같았던 그 순간, 화물차 아래에서 빨간 불꽃이 피어올랐습니다. 불길은 순식간에 주변에 있는 상자들로 번졌고 새까만 연기가 주차장으로 뿜어져 나왔습니다.
불길은 점점 거세졌지만, 스프링클러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탈출하지 못한 그들
그 시간, 불이 난 지하 1층엔 이 씨와 채 씨를 비롯한 하청업체와 용역업체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매캐한 냄새가 나는 연기를 보고 나서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직원들은 불이 났다고 소리치며 비상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하주차장에 비상구는 총 11곳이 있었습니다. 몇몇은 가까운 비상구로 향했고 다른 이들은 화물 엘리베이터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열려야 할 비상구가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뒤로 돌아 다른 출구를 찾으려 했을 때 이미 지하주차장은 유독가스로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3명은 화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4명은 비상구 근처에서 발견됐습니다. 모두 지하주차장에서 절박하게 탈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빈소를 지키던 채 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려서부터 고생하다가 황망하게 떠났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물건이 적재돼 있던 하역장과 발화 장면 (대전지검, 연합뉴스)
작동하지 않았던 소방 설비
경찰과 검찰 수사가 진행되며 지하주차장이 얼마나 안전에 취약했는지 드러났습니다.
먼저 하역장엔 쉽게 탈 수 있는 상자가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검찰은 화물차의 매연 배출구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가 상자에 불을 붙여 화재가 시작됐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현대아울렛 측은 법정에서 "자동차의 매연저감장치 과열로 온도가 상승해도 발화점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현대아울렛의 주장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불이 나면 연기 배출이 어려워 큰 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큰 지하에 하역장을 두고 불에 잘 타는 상자와 물품을 잔뜩 쌓아뒀던 건 변하지 않은 사실입니다.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원인도 발표됐습니다. 검찰은 "소방시설관리 업체 직원들이 화재감지기가 오작동한다는 이유로 경보시설을 껐고 화재 발생하고 7분 동안 소방시설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방화셔터와 방화커튼이 제때 내려오지 않았고 스프링클러 설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비상문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불이 나면 자동으로 열려야 했지만 문은 굳게 잠겼고, 희생자들은 지하주차장을 벗어나지 못 했습니다. 소방시설 하청업체 측은 재판에서 "비상문 자동 개폐장치를 잠가 대피하지 못하게 한 보안 하청업체 때문에 인명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도 법정에선 참사의 책임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고 누가 가장 큰 책임 있었는지 결론이 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여러 겹으로 쌓인 안전 불감증이 생명을 앗아갔다는 주장엔 많은 분이 동의할 겁니다.
현대 아울렛 희생자 분향소 (연합뉴스)
대피할 권리, 어디까지 왔나
대전 아울렛 화재가 일어나자 정부는 곧바로 대형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안전 점검에 나섰습니다. 전국 207개 복합쇼핑몰을 점검한 결과 42%에 달하는 87곳에서 위반 사항이 발견됐습니다. 비상 대피로의 방향을 표시하지 않거나 비상탈출구가 없는 곳에 비상구를 표시하는 사례가 적발됐습니다. 충격적인 사고가 벌어진 뒤에도 안일하게 안전 관리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모두가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지는 대전 아울렛 화재 1주기를 앞둔 오늘까지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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