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이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음이 기다리는 전선으로 보내며 그 어린 딸과 아버지로 하여금 한없이 눈물 흘리게 하는 것입니까!”
지난달 28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 우크라이나에서 온 교민 김평원 씨가 마이크를 잡고 소리 높였습니다.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며 발언을 이어나간 김평원 씨는 전쟁을 견뎌야 하는 우크라이나 청년들의 아픔을 대변했습니다.
러시아를 규탄하는 성명을 대사관 측에 전달하고 집회는 끝이 났지만 참가자들은 곧바로 광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국기, 평화를 바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양손에 든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안부를 물으며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립세무종합대에서 한국어학장을 맡고 있는 최광순 교수에게 우크라이나에서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교민철수령이 내려져 도망치듯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최 교수는 항공편들이 결항돼 육로로 이동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키이우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구할 수 없어서 공항에서 다시 표를 구해서 비엔나로 갔다가 다시 슬로바키아 가서 검사하고 핀란드를 경유해서 5일 만에 도착했습니다.”
최광순 우크라이나 국립세무종합대 한국어학장
상황이 지금도 비슷한지 묻자 최 교수는 불가리아나 루마니아로 탈출하는 사람들도 36시간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최 교수는 현지 제자들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물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공습과 피격의 모습들을 날마다 연락을 학생들이 줍니다. 저녁마다 ‘무서워요 두려워요’라고 아이들이 이야기할 때마다 저희가 (아무 것도)해줄 수 없는게 참 미안하기도 합니다.”
최 교수는 매일 저녁마다 학생들과 연락을 하곤 했지만 인터넷이 끊어지고 있는 곳도 있어 최근엔 낮 시간이 돼야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의료 봉사나 헌혈을 하는 제자들이 대견하다고 이야기한 최 교수에게 바람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저희는 빨리 들어가서 복구와 또 학생들이 평상시에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건강히 있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외교관 꿈꿔왔는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우크라이나에게 힘이 되고 싶어 더 많이 전쟁의 참상과 진실을 알리고 싶다는 카트리나 씨. 한국에서 국제개발협력 대학원을 졸업한 카트리나 씨는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엔 코로나19 때문에 우크라이나로 가지 못했던 카트리나 씨는 가족들을 보지 못할 날들이 더 늘어났습니다.
“외교관 일을 하고 싶어서 많이 (수업을) 들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외교관이 되길 꿈꿔왔던 카트리나 씨는 이번 전쟁을 보면서 꿈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카트리나 씨는 진짜 전쟁이 일어나자 외교는 힘을 잃고 다른 나라들도 행동으로 도움을 주기보다 말로만 평화를 지키려 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지난달 28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유학생 카트리나 씨
“제가 알기로는 (현지 상황이) 아주 안 좋아요.” 하르키우에선 음식이 부족해 열악한 상황이라고 말한 카트리나 씨에게 가족은 괜찮은지 묻자 자신의 오빠가 최근 군에 자원했다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이틀 전 아버지한테 메시지를 받았어요 오빠가 군대에 들어갔다고. 오빠한테도 메시지 받았고요.”
슬픔보다 단단함이 느껴지는 카트리나 씨가 전하는 소식에 그 원동력을 물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이니까요.” 카트리나 씨의 가족들은 모두 오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도 답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당연한 일을 하는 거라고 설명한 카트리나 씨는 자신의 어머니도 민병대에 일원으로 지역 안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해방촌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유학생들이 전하는 이야기
취재진은 서울 해방촌에 위치한 한 가게에서 미네르바 대학을 다니고 있는 우크라이나 유학생 3명을 만났습니다. 옐리자베타 씨는 지난해 8월 학기가 시작돼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던 때, 마지막으로 가족들의 얼굴을 봤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날을 축하하는 독립기념일을 지내고 다음날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던 옐리자베타 씨. 이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족과 만날 수 없게 된 겁니다.
옐리자베타 씨의 가족은 2014년 친러 세력과 분쟁이 격화된 도네츠크 지역에서 키이우로 이사를 왔는데 이번엔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가족들이) 지하실로 피신하기도 하는데 오빠는 자발적으로 군대를 돕고 있어요.”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도 옐리자베타 씨의 오빠는 우크라이나 군에게 세정제, 의류 등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리야 씨는 자신의 가족들이 하르키우에 살고 있었지만 최근 서쪽 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친구 테티아나 씨의 조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피신했다고 알렸습니다. “제가 살던 도시가 많이 부서졌어요. 도시의 중심부는 거의 파괴됐어요.” 일리야 씨는 러시아 군이 시민들이 사는 집, 식료품점, 병원까지 공격한다며 러시아 군의 잔혹함을 알려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취재진에게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텔레그램 채널을 보여주는 모습
“우크라이나의 나치주의, 파시즘을 없애기 위해 러시아가 침공했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일리야 씨는 러시아 측에서 공급되는 잘못된 정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하는 일을 보면 그런 거짓 정보들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일리야 씨는 자국의 공신력 있는 언론이나 정부 기관의 공식 텔레그램 채널을 이용해 신뢰할 정보를 얻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키이우가 함락됐다거나 우크라이나 군이 항복했다거나 하는 거짓 정보들도 있어요.” 테티아나 씨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는 일리야 씨의 말에 동조했습니다. 잘못된 정보들이 힘들게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사기를 오히려 꺾는다고 설명한 테티아나 씨는 열악한 생활을 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실상을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생필품 지원이 시급하다고 설명하면서 영유아에게 필요한 이유식도 부족한 절박한 상황이라며 취재진에게 알려 달라고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거주하던 테티아나 씨는 지난해 8월 학업 때문에 집을 떠날 때만 해도 러시아의 침공은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기억했습니다. 테티아나 씨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한 서부 지역이지만, 자신의 가족들 역시 공습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모두 지하실로 대피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 모습. 왼쪽부터 일리야, 테티아나, 옐리자베타
인터뷰를 마친 뒤 가게 테라스를 가득 덮을 만큼 큰 우크라이나 국기를 옐리자베타, 일리야, 테티아나 씨가 나눠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한 시민은 우크라이나에서 왔느냐며 이들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옐리자베타 씨가 한 가지 소식을 전했습니다. “6일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반전 집회에 참가하려고요”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 이혁재 기자 / yzpotato@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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