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익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겠다'는 꾐에 넘어가 개조비용이 부풀려진 화물차 할부 계약을 맺은 택배 취업사기 피해자들의 사연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17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 환경·보건범죄전담부(하담미 부장검사)는 총 1천894명의 피해자로부터 부풀린 트럭 개조 비용 523억 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물류회사 대표 이모(38)씨와 자회사 대표, 차량 개조업체 운영자 등 24명을 최근 기소했습니다.
이들은 대기업 택배회사 인사담당자 등을 가장해 온라인에 구인글을 올리고, 면접을 보러 온 피해자들에게는 냉동탑차로 개조한 트럭만 사면 안정적인 택배 일이 가능한 것처럼 속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초 한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차모(63)씨에게 서울 영등포구의 한 물류업체로부터 먼저 전화가 왔습니다.
택배 일을 해본 적이 없어 주저하는 차씨에게 업체 관계자들은 "일흔 넘은 사람도 월 700만 원씩 받고 일하고 있다"라거나 "연세에 맞게끔 아파트 위주 지역으로 배치할 테니 5㎏ 이하의 가벼운 물건만 배송하면 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냉동탑차로 개조된 화물차를 구매하는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습니다.
차씨가 "차를 덜컥 샀다가 일을 끝까지 못 하게 되면 어떡하냐"고 묻자 업체 팀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일이 생기면 명의변경을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습니다. 차씨는 화물차 할부 계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을 기다려 받은 배송 업무는 약속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차씨는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무거운 물품을 들고 깜깜한 반지하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다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업체 측은 차량 명의변경을 해달라는 차씨의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현재 수입이 없는 차씨는 지금도 해당 업체가 연결해준 캐피탈 회사에 매달 64만 원을 내고 있습니다.
차씨는 "높은 이자까지 포함해 5년간 총 3천800만 원을 내야 한다"며 "생각하면 속상하기만 해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계약서 사진도 다 지웠다"고 말했습니다.
물류회사 대표 이씨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주로 노인과 장애인, 신용불량자 등 신체·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의 간절함을 노렸습니다.
지체장애 5급인 피해자에게는 "아저씨는 몸이 불편하니 좋은 일을 소개해 드리겠다"며 "할부로 냉동탑차를 사라. 일하다 안 되겠으면 차를 반납하면 회사에서 팔아주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들은 차량 개조업체와 공모해 통상 600만 원 수준인 개조 비용을 1천200만 원으로 부풀린 허위 계약서를 피해자들에게 내밀고 차액인 600만 원은 자신들이 받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배당받은 업무는 냉동탑차가 필요하지도 않은 일반 배송업무였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한 30대 여성 피해자는 지난 5월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와 트럭을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지난 4월 이씨를 구속기소한 데 이어 차량 개조업체 관계자와 자회사 대표 등을 검거해 모두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러나 이씨 등은 "본인 동의하에 계약서를 썼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관련자들이 기소된 후에도 이름만 바꾼 자회사들이 유사한 구인광고를 끊임없이 올리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피해자들은 당부했습니다.
차씨는 "사기 사실을 안 이후 항의하러 업체에 찾아갈 때마다 여러 명이 면접을 보려고 대기하고 있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거짓말에 속아 트럭을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은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에 이 일에 뛰어든 것도 아니고, 다 어떻게든 생활비라도 보태 보려 애쓰던 것뿐"이라며 "아직도 억울해서 눈물만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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