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와 함께 그린 작품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조영남 씨(75)에게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미술계 관행에 따르면 친작(親作) 여부는 구매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25일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조씨의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에선 기술 보조를 통해 작품을 제작했다는 점을 구매자들에게 사전 고지할 의무가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미술작품 거래에서 보조자를 사용해 제작됐는지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들은 '조영남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구입했고, 조씨가 위작·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는 '사법자제 원칙'에 따른 판결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검사는 저작권법 위반이 아니라 사기죄로만 기소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선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문제된 건 아니다"고 판단했다. 또 "위작·저작권 다툼이 없을 때는 미술작품 가치 평가는 전문가 의견을 존중해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판결에 따르면, 조씨는 송 모씨에게 1점당 10만원을 주면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본인이 약간 덧칠한 뒤에 서명을 넣어 17명에게 1억5350만원에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조수 도움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미술계에서 흔한 일이며 작품을 거래할 때 적극적으로 고지할 사항도 아니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1심은 조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사실상 송씨의 창작 행위로 봐야하며 대작 화가가 있다는 점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송씨는 조씨의 고유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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