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교육에 집착하다시피 올인하고 있지만 오래된 (교육) 시스템을 고수한다. 첨단을 달리는 인재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구시대 시스템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벤 넬슨(사진) 미네르바 스쿨 설립자는 2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 20회 세계지식포럼에서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구시대적인 교육 시스템을 지적했다.
벤 넬슨은 "한국에 제가 자주 오는 이유는 한국에 오면 미래를 맛보는 느낌"이라며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경제적 기적을 한국은 이뤘고, 또 세계를 선도하는 천재적인 일꾼들도 많이 배출했다"고 한국의 인재들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교육 시스템 만큼은 수십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다"며 "분명 교육의 중요성을 어떤 나라보다 잘 알고, 교육 환경도 뛰어나지만 교육 시스템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벤 넬슨은 누구보다 교육 환경 변화에 관심이 많다.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과의 바둑을 이기고,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기르려면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4년 고민 끝에 미네르바스쿨을 설립했다. 미국의 대학 컨소시엄인 KGI로부터 인가를 받은 미네르바스쿨 설립에는 하버드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지낸 스티븐 코슬린,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과학정책자문위원인 비키 챈들러가 참여했다. 모두 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직업'에도 가장 잘 어울리는 인재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컸다.
벤 넬슨은 "우리가 미래를 얘기할 때마다 2가지 문제점을 노출하는데 그 첫번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얘기하고 막연히 불안해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불안한 미래보다는 지금의 현재가 그래도 괜찮다고 여긴다는 점"이라며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안해도 된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논할 때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지금 당장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고, 지금 당장 어떠한 곳에서도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해 살아남을 수 있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 미네르바스쿨을 설립했다"고 강조했다.
미네르바스쿨은 인재 교육을 위해 온라인 수업 방식을 택했다. 강의실은 따로 없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다면 학생이 있는 곳이 곧 강의실이 된다. 미네르바스쿨에서 유일한 오프라인 건물이라면 기숙사가 있다. 학생들은 전 세계 7개 도시에 퍼져 있는 기숙사를 3~6개월마다 옮겨 다니며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여를 한다.
온라인 수업이라고 해 흔히 생각하는 '사이버 대학'을 떠올리면 안 된다. 일방적인 온라인 강의나 녹화된 강의가 제공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미네르바스쿨 공식 홈페이지]
미네르바스쿨에선 학생들의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 내 실제 사회에서 필요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능동적 학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예를 들어 수업 전 학생들은 교수가 제공한 강연 영상을 미리 학습하고 강의실에서는 토론이나 과제 풀이는 진행한다. 실제 수업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토론을 하는데 오롯이 집중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
첨단을 달리는 인재들은 이같은 교육 시스템에 곧 환호했다. 신생 대학으로 문을 연 지 2년만에 입학정원 306명을 뽑는데 1만6000여 명이 지원, 합격률 1.9%를 기록했다.
2016년 당시 미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네르바스쿨은 하버드(5.2%) 예일(6.3%) 스탠포드(4.7%)보다 합격률이 낮다"며 "전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라고 평가했다. 미네르바스쿨에 대해 하버드보다 더 들어가기 힘든 대학이란 수식어가 붙은 계기였다.
벤 넬슨은 "현재 90개국에서 10만명 이상이 대학 입학을 지원하고 있다"며 "기존 교육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인재들이 몰리는 것에서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미네르바스쿨에서는 지난해 첫 졸업생이 나왔다. 졸업생들의 진로에 대해 벤 넬슨은 구체적인 기업명 등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일류 대학의 졸업생들보다도 뛰어난 곳에서 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글로벌 회사로부터 미네르바스쿨 졸업생들이 자신의 회사로 다닐 수 있도록 설득시켜달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고 말했다.
첫 졸업생을 배출한 미네르바스쿨은 석사과정을 개설하는 한편, 글로벌 기업의 임원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역시 도입해 교육의 범위를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벤 넬슨은 "한국의 대기업들과도 임원 교육 프로그램 도입을 위한 파트너 협약을 맺을 것"이라며 "미네르바스쿨의 교육 시스템이 한국의 교육 제도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다 개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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