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이제 막 배달을 마친 안형준씨(49)가 빨간색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우버 드라이버 오픈 채팅방을 통해 만나기로 약속한 안씨는 "집이 이태원이라 이 근처에서 배달을 한다"라며 "지금 두 건의 배달을 하고 왔다"고 말했다. 오토바이를 탄 안씨의 모습은 누가봐도 배달 알바지만 사실 안씨의 본업은 의류수출 프로모션 업무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 2년째 배달을 하고 있다는 안씨는 5분 정도 얘기를 나눈후 다시 배달을 위해 녹사평역 방향으로 떠났다.
주말이나 퇴근 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배달 알바를 하는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다. 전업 기사가 아닌 일반인이 배달을 하는 크라우드 소싱 기반의 배달 대행 서비스 확산되면서 '투잡'을 뛰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는 것.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일반인이 음식 배달을 하는 '배민커넥트'를 지난 3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이커머스 업체 쿠팡은 지난해 8월부터 로켓배송을 위한 '쿠팡플렉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정식 출범을 앞둔 음식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도 일반인 파트너를 모집하고 있다. 지난 2017년 8월 서울 강남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음식 배달 앱 '우버이츠'는 현재 수도권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이밖에 부릉, 바로고 등 배달 대행 전문 업체들도 이러한 서비스를 이미 시작했거나 검토하고 있다.
일반인 배달 서비스는 업체마다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자신이 보유한 이동수단을 이용해 하루에 2~4시간씩 원하는 지역에서 배달 대행을 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이동수단은 오토바이 외에도 자전거와 킥보드, 도보 등이 포함되며, 배달 수수료는 대부분 건당 3000~4000원에 형성돼 있다.
강남 우버그린라이트센터. 이곳에서 우버이츠 드라이버 등록 및 관련 교육이 진행된다. [사진 = 김설하 인턴기자]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에 있는 우버 그린라이트센터에는 배달 드라이버 등록을 위해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20~30대로 보이는 직장인 김민수 씨(가명)는 배달 알바를 하려는 이유에 대해 "간단히 말해서 돈 때문"이라며 "퇴근후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투잡 희망자는 62만9000명에 달했다. 이는 전년보다 10% 이상 증가한 수치로, 조사가 시작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60만명을 넘었다. 배달 알바는 이처럼 일정한 수입 외에 부수입을 얻고자 하는 직장인에게 주목 받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은 지난 2월 27일부터 6일간 30대 이상 직장인 205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아르바이트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응답자의 18.6%가 '현재 직장 생활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알바를 하는 이유에 대해 '수익'이라고 답한 사람이 85.8%(복수 응답)였다. 이외에 '남는 여유시간을 유익하게 활용하기 위해' 알바를 한다는 답변이 31.5%(복수 응답)를 차지했다.일반인 배달 서비스는 이처럼 여유 시간을 활용해 탄력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직장인 투잡족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성우를 본업으로 하는 이우진 씨는 서울 강남 일대에서 배달 알바와 함께 투잡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점심에 3시간, 저녁에 2시간을 투입하면 7만원을 벌 수 있다"며 "배달 스케줄을 직접 조정할 수 있다는 게 이 알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쿠팡 영등포캠프 전경. 쿠팡플렉스 지원자는 전국에 위치한 쿠팡 캠프에서 배달 물량을 할당 받는다. [사진 = 김설하 인턴기자]
기업 입장에서도 일반인 배달 서비스는 예측하지 못한 택배 물량과 특정 시간대에 집중되는 음식 주문량을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쿠팡은 "지난해 폭염과 물난리때 처럼 예외적으로 배달 물량이 갑작스럽게 증가할 때 쿠팡플렉스가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배달의민족은 "음식 주문량이 몰리는 점심·저녁과 주말에 배민커넥트로 더 많은 라이더를 투입해 배달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마트와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까지 '새벽배송', '당일배송'에 사활을 거는 요즘, 일반인 배달 서비스는 배달 인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기업들의 숨통을 트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생활밀착 일자리 제공 전문기업 벼룩시장 구인구직은 올해 상반기 채용공고와 이력서를 비교·분석한 결과 "운전·배달 분야는 구인난"이라고 진단했다. 운전·배달 분야는 기업이 낸 상반기 채용공고의 7개 분야 중 1위(36.8%)를 차지했지만, 구직자가 희망하는 직종에서는 11.1%에 그쳤다.
반면 일각에서는 일반인 배달 서비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기도 한다. 배민커넥트를 제외한 대부분 업체는 산재보험·오토바이 유상운송용 종합보험 등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직접 고용'이 아닌 '위탁 고용'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배달 중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업체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당사자가 직접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 자차를 이용해 배달 알바를 하는 김 모씨(52)는 "무엇보다 사고 위험에 대한 부담이 가장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또 안형준 씨는 "이 일을 하면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지만 보험 측면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또 일부 업체는 배달 과정에서 파손된 음식을 근로자가 직접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기사들의 불만을 사고있는 부분이다.
[디지털뉴스국 김설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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