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고양시 열 수송관 파열사고 원인으로 27년된 낡은 배관이 지목됐다. 이에 따라 노후한 지하시설물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5일 경찰과 고양시, 한국지역난방공사 등에 따르면 파열된 열 수송관(외경 1000㎜, 내경 850㎜)은 지난 1991년 매설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30년 가까이 된 낡은 배관에 균열이 생긴 뒤 내부의 엄청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열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고현장을 확인한 고양시의 한 관계자는 "수송관의 용접 부분이 오래돼 녹이 슬어 있었다"며 "압력을 견디지 못해 파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고 원인을 조사중인 난방공사 고양지사 관계자도 "정확한 원인은 조사해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노후 배관이 문제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 경찰의 현장감식 과정에서도 외부충격 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관리소홀로 인해 사고가 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필요에 따라 관련자를 소환 조사하고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입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소방, 난방공사와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전에도 노후배관 파열 사고가 적지않게 발생했다. 앞서 지난 1월 24일 서울 노원구 열병합발전소 인근에서 열 수송관이 파손돼 인근 아파트와 주택 6만4000여 세대의 온수공급이 끊긴 적이 있다. 당시 파열된 배관은 20년 넘게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만큼 관리소홀 여부를 면밀히 조사하고 관련자 처벌 등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르고 있다. 한 시민은 "도심 한 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면서 "관리상 문제는 없었는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후배관을 포함해 조성 30년이 된 일산신도시의 기반시설이 낡아 잦은 사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노후한 지하시설물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땅속에는 열공급관 외에 상·하수도관, 가스 공급관 등 수많은 기반시설이 매설돼 있다.
특히 이번에 사고가 난 백석동 지역은 잦은 지반 침하 사고가 발생한 전력이 있다. 지난해 2월 6일 백석동 중앙로 도로에 땅 꺼짐 현상이 발생해 편도 5개 차로 중 3개 차로가 통제된 바 있다. 앞서 2016년 7월에는 백석동 인근 장항동 인도에 지름 2m, 깊이 2m 크기의 땅 꺼짐 현상이 발생해 길을 가던 60대 여성이 빠져 부상을 입었다. 2005년에도 이번 사고 지점과 가까운 인도에서 20대 남성이 직경 1m, 깊이 3m의 구덩이에 빠져 30분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기반시설 노후화는 지반 침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경기도가 지난해 2014∼2016년 발생한 도로 지반 침하 240건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4건 중 3건은 낡은 상·하수도관 때문으로 분석된 바 있다.
한편 이번 백성동 사고는 지난 4일 오후 9시께 백석역 인근에 매설된 열 수송관이 터지면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차량에 고립된 손모(69)씨가 숨지고 41명이 부상을 당했다. 가벼운 화상을 입은 37명은 귀가했고, 나머지 4명은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또 일산동구 백석동과 마두동 일대 아파트 단지 2861세대와 상가 17곳에 난방공급이 중단돼 밤새 강추위에 떨어야 했다.
사고 지점이 유동인구가 많은 전철역 인근이여서 인명피해가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차량이 파손될 정도의 강한 압력에 의해 100도 이상의 끓는 물과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시민들이 미처 피하지 못해 부상자가 속출한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특히 사망자 손모씨는 딸, 예비사위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그는 사고 당시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차량 뒷좌석에서 발견됐다. 차량은 패인 도로에 앞쪽이 빠진 상태로 앞 유리는 대부분 깨져 있었다. 경찰은 순간적으로 치솟은 물 기둥이 차량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중화상을 입은 손씨가 뒷좌석으로 탈출을 시도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양 =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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