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전국이 흰 눈으로 뒤덮일 무렵 인도양의 크리스마스섬에서는 눈길 대신 붉은 '융단길'을 감상할 수 있다. 이맘때만 펼쳐지는 황홀한 절경은 다름 아닌 홍게가 대이동을 하는 모습이다.
수많은 홍게가 살아 숨 쉬는 크리스마스섬은 호주 비자치령에 속하지만 호주와 2600km나 떨어져 있어 사실상 인도네시아에 더 가깝다. 크기는 울릉도의 두 배 정도로 약 2000명의 주민이 각양각색의 동식물과 공존하며 살아간다. 인구수가 적고 비교적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아 운이 좋을 경우 생태계를 형성하는 고귀한 순간도 지켜볼 수 있다.
[사진 = 크리스마스섬 공식 페이스북]
그중에서도 '홍게 대이동'은 크리스마스섬의 특별한 연례행사다. 약 1억 마리의 홍게는 12월 우기가 시작되는 철에 번식을 하기 위해 서식지인 숲을 떠나 해변으로 이동한다. 홍게가 바닷가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1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간 온 마을은 땅에 라면스프를 흩뿌린 것처럼 도로를 점령한 홍게들로 빨갛게 물든다.해변에 먼저 도착한 수컷은 암컷이 올 때까지 인근 숲에 굴을 파놓고 기다린다. 그리고 암컷이 도착하면 물이 풍부한 해안가로 나가 교미를 한다. 짝짓기가 끝난 후 수컷은 숲으로 돌아가고 암컷은 수컷이 만들어놓은 굴에서 약 2주간 알을 품는다. 시기에 맞춰 바다에서 알을 턴 암컷은 다시 육지로 이동한다.
암컷이 알을 턴 지 4주 정도 지나 바다에서 부화한 새끼 홍게들은 어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육지를 밟기도 전 많은 수의 새끼들이 고래에게 잡아 먹히지만 살아남은 홍게들은 다시 한번 빨간 물결을 만들며 이동한다.
홍게의 이동을 돕기 위한 통행 금지 표지판 [사진 = 크리스마스섬 공식 페이스북]
한 달 가까이 걸리는 대장정 기간 홍게들은 각종 수난을 겪는다. 도로로 가로질러 이동할 때는 차에 치이는 경우가 허다하며 아프리카 외래종 개미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섬에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고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서 수분 부족으로 말라 죽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홍게들이 주민들이 만든 전용 육교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 크리스마스섬 공식 홈페이지]
이에 주민들은 홍게의 개체 수를 보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홍게가 집안으로 들어올 경우 말라 죽지 않도록 호스로 물을 뿌려주며 학생들은 홍게 스티커를 제작·배포해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는 등 각종 캠페인을 벌인다. 또 이동이 절정에 다다를 기간에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차량을 통제하고 전용 육교·울타리 등을 만들어 홍게가 무사히 바다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크리스마스섬 홈페이지에 따르면 올해 홍게의 산란일은 오는 13일에서 15일이다.
[디지털뉴스국 이유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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