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지시·작성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돼 항소심 중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8·고등고시 12회) 등이 최근 청와대에서 공개한 이른바 '캐비닛 문건'의 발견 경위 등을 두고 법정에서 논쟁을 벌였다.
31일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 심리로 열린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사법연수원 23기) 등의 항소심 3회 공판에서 변호인들은 캐비닛 문건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았다.
조 전 장관 측 변호인은 "해당 문건이 대통령기록물법을 위반하고 수집된 증거는 아닌지 절차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상 불법적으로 취득한 자료는 형사 재판의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이어 "특검 측이 제출한 청와대 문건은 일부 선별되거나 가려져 있어 특정 쟁점에 대해 편견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면서 "전체 문건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 측도 "제출된 문건이 원본인지, 사본이라면 원본과 동일한지 등이 소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 기록들이 자꾸 밖으로 나오는 건 부적절하고 경우에 따라 범죄적 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문제 삼았다.
특검 측은 "혐의와 관련된 문건은 모두 재판부에 제출했고, 일부 가린 것은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이 요청한 데 따른 것"이라며 "정식으로 요청하면 피고인 측이 최대한 열람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특검 측에 "문서를 입수한 경위와 현재 원본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등은 재판부와 피고인 측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소명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말했다.
다만 문건의 조작 여부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자 변호인 측에 에둘러 자제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해당 문건 제출은 책임있는 기관에서 보관·관리된 것을 공적 업무 수행의 일환으로 제출한 것이고, 피고인들이 (청와대에서) 담당하던 업무나 회의에 관한 것"이라며 "피고인이 직접 보면 조작 여부를 알 테니 지나치게 시간을 소모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또 "특검과 피고인 측이 공소사실에 대해선 공방을 벌일 수 있지만 올바른 결론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재판 말미에 문체부 소속 직원 김 모씨가 방청석에서 재판 내용을 무단으로 녹음하다 적발됐으나 첫 사례인 점 등을 감안해 훈방 조치됐다. 법정에서는 재판부 허가 없이 녹음·촬영을 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 또는 최대 20일 감치에 처할 수 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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