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사제폭탄 테러와 경남 양산시 아파트 외벽 작업자 밧줄 절단 사건, 충남 청주시 인터넷 수리 기사 살해 등 최근 사소한 이유에서 비롯된 끔찍한 범죄가 '분노조절장애'라는 단어와 함께 뉴스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분노조절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도 있다.
기분장애·우울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6)는 "충동조절 장애(분노조절 장애는 의학적용어가 아니다)는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순간적으로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는 증상은 '충동조절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다"라며 "하지만 원래 폭력적인 사람이었다면 그건 질환이 아니라 성향의 문제이며 예전에 안 그러던 사람이 변했을 때 질환을 의심한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어떤 사람이 질환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기능을 잃었을 때 이상 징후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해주는 건 오랫동안 그 사람을 봐온 주변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자신의 감정을 잘 제어하던 사람이 최근 그것을 못 하게 됐을 때 정신질환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또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폭력성이 향하는 대상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 교수는 덧붙였다.
때문에 묻지마 폭행·살인 사건과 같은 분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은 낮다. 범죄자들의 정신적 문제는 감정조절기능이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 약한 죄의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전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만약 정신질환으로 인해 제어되지 못한 분노가 자신과 가깝지 않은 사람을 향했다면, 질환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할 때까지 방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 가족의 손에 이끌려서나 본인 스스로 이상징후를 느끼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전 교수는 전했다.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받는 진단명은 충동조절장애다.
충동조절장애를 앓는 이유는 연령대별로 다르다. 전 교수는 "20대까지의 젊은 층은 ADHD와 양극성장애(조울증)가, 중년층은 가정·직장에서의 갈등이나 알코올·약물 남용이, 노년층은 뇌의 변형이 각각 원인일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후천적으로 정신질환을 얻은 경우는 완치율이 높다. 갈등에 따른 스트레스나 알코올·약물 오남용 등 원인이 명확해서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어떤 때, 어떤 이유로 감정 조절에 실패하게 되는지 파악하고 그 상황을 회피할 방법을 알려주거나 감정을 조절하도록 훈련하는 게 일반적 치료법이다.
하지만 상태가 심각하면 뇌의 전두엽에 작용하는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전두엽은 감정을 관장하는 곳으로 이마 바로 안쪽에 있다. 이마에 물리적 충격을 당한 뒤 감정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전 교수는 전했다.
*전홍진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신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분장애와 우울증을 주로 연구해온 전 교수는 지난 2008년 서울대병원에서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 하버드의대 메사추세츠종합병원에서 지난 2015년 1월부터 2년동안 자문교수를 지냈다. 미국정신신체의학회 정회원이며 현재 대한생물정신의학회 윤리연구이사, 한국정신신체의학회 연구이사,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총무이사 등을 맡고 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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