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학생들을 버리고 먼저 배를 탈출해 징역형을 살던 세월호 선원들이 뒤늦은 양심고백 편지를 광주의 한 목사에게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편지를 통해 선원들은 "목숨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다"며 뒤늦은 참회록을 적었다. 사고 원인과 관련해선 "복원력을 상실한 세월호의 C데크 화물칸 부분이 천막으로 불법개조돼 해수가 상당 부분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편지를 보낸 2인 중 한명은 출소 직후 폐암으로 사망했고 다른 한명은 복역중 딸이 자살하는 비극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매일경제신문은 세월호의 조타수였던 오모씨와 조기장이었던 전모씨가 광주 광산구 소재 서정교회 장헌권 목사에게 지난 2014년 11월 보냈던 양심고백 편지를 입수했다. 이 편지는 장 목사가 참사 직후 세월호 선장 이준석씨를 비롯한 선원 15명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참회하고 양심고백을 해달라"며 보냈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이들 2인을 제외한 선장 이씨와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수취거절'로 편지가 반송됐다.
전씨는 이 편지에서 "단원고 남녀 학생들이 깊은 바다속으로 (빠져 사망한) 청천벽력 같은 암담한 현실이 너무도 두렵고 무엇으로도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큰 죄를 지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자식이 있는 부모 입장에서 생때같은 어린 자식들의 처참한 절규가 내 심정을··· 시커멓게 오열하는 그 가족들의 원망과 눈물로 피눈물로 흘려 내린다"며 "이 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내 목숨으로 대신하고 싶다"고 참회했다.
전씨는 다른 여객선에서 근무하다가 직장을 옮겨 지난 4월15일 세월호에 처음으로 탔다가 이튿날 곧바로 사고를 겪었다. 전씨는 지난 2015년 11월 대법원에서 수난구호법(조난선박 구조) 위반과 유기치사상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조타수 오씨는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오씨는 복역 중 폐암 발병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출소한 뒤 지난해 4월 투병 중에 사망했다. 조기장 전씨 역시 복역 중에 당시 33세이던 딸이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다.
전씨는 편지를 통해 "못난 얘비를 대신해 정이 많았던 딸이 영정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떠났다"며 딸의 자살 사실을 장목사에게 털어놨다.
오씨는 "진상 규명을 위해 울부짖는 희생자 유가족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승객 구조에 미흡한 점, 다시 한번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했다.
조타수 오씨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세월호 침몰원인도 그림을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오씨는 배의 1개층을 2개로 나눈 트윈데크 중 C데크 부분의 하층부 외벽이 천막으로 불법 개조돼 해수의 급격한 유입이 이뤄졌다고 편지에서 설명했다.
C데크는 세월호 선미쪽 부분으로 2층 화물칸이다. 선미 쪽 화물칸에는 승용차와 화물차 등이 주로 적재되는 데 당초 철재로 만들어져 해수 유입이 차단되야 할 부분이다. 급격한 항로 변경 등 이미 검찰조사에 밝혀진 원인으로 세월호가 복원력을 상실해 기울어 진후 천막으로 만들어진 데크 부분으로 화물칸에 급격한 해수유입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배가 완전 침몰했을 것이라는 조타수 오씨의 추정인 셈이다.
오씨는 "검찰조사에서 도면상에 뚫어져 있는지 모형을 제시했으니 검찰은 알고 있겠지요"라고 편지에 적었다. 오씨 주장은 지난해 특조위 조사 때도 사실로 일부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침몰 시뮬레이션을 담당했던 한국해양대 이상갑 교수는 청문회에서 "화물창 선미 전체에 걸친 초등학생 신장 정도의 큰 개구부를 통해 엄청난 해수가 침수돼 급격히 전복됐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세월호가 오는 목포신항에 도착해 거치된 후 오는 10일부터 본격적으로 선체조사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할 경우 이같은 해수유입 경로에 대한 진실규명도 조사위가 밝혀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다.
한편, 세월호 선원들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파산한 상황에서 정부의 구상권 청구소송 등으로 주택과 자동차 등 대부분 재산을 가압류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3년형을 선고 받고 현재 장흥교도소에 수감중인 조기수 김모씨 아내 임모씨는 매일경제와 만나 "남편도 애들을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수감중에도 정신병원을 다니고 있다"며 "동네에서 '세월호 선원 집'이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가압류로 인해 이사도 가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진도 =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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