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절반은 아이 먹이는 일’이라더니 15개월이 된 아들녀석 밥 먹이는 일이 정말로 ‘큰 일’이 됐다.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면 바닥에 신문지를 하나 깔고 먹여야 할 정도로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아이가 휙휙 내던지는 밥 뭉치와 퉤퉤 뱉어버리는 반찬들 때문이다.
떨어진 밥알들을 주워담고 있노라면 어느 틈엔가 물컵을 낚아챈 아이가 손을 컵 안에 넣었다가 뺐다가 한다. 밥을 먹는건지, 물장난을 치는건지, 잠깐 엄마가 방심한 틈을 타 물컵마저 엎어버리는 아이. 이런 아이에게 밥 한번 먹이며 준비해야 할 것은 신문지 말고도 여벌의 옷과 엄마의 인내심이 꼭 필요하다.
이유식을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타락죽, 깨죽 등의 유동식 이유식의 신세계를 접한 아이는 정말로 따박따박, 꿀꺽꿀꺽 잘도 받아 먹었다. 문제는 이유식 후기에 접어들며 먹기 시작한 고형식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이가 빨리 난 아이는 씹는 즐거움을 찾는 듯했고, 난 이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큼지막하게 자른 소고기부터, 생선전, 고구마, 견과류를 비롯해 살짝 데쳐 식감을 살린 야채 등을 먹였다.
하지만 막상 아이는 먹는 즐거움 보다는 이같은 음식을 손으로 주물럭주물럭 노는 재미가 더 큰 듯 보였다. ‘놀 수도 있지’라며 지켜보다가도 밥 먹는 시간이 1시간을 넘자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놀면서 갖가지 음식들로 어지러진 식탁 주변을 치우는 일 역시 날 피곤하게 했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식탁에서 아이를 내려오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음식 대신 장난감을 손에 쥐어줬다. 밥 수저를 들고 내가 아이를 따라다니는 편이 속 편하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냠냠, 밥 먹자. 옳지 옳지, 잘 먹네” 효과가 있었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노느라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아이 입으로 쑤욱 수저를 들이미니 자동반사적으로 입을 벌려 받아먹었기 때문이다. 참 편했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아 조바심 낼 필요도 없었고, 집 역시 한결 깨끗해졌다.
그런데 이 방식 역시 점점 고달파졌다. 아이가 이 방 저 방으로 도망(?) 다니며 밥 수저를 피하기 시작해서다. 아예 손으로 수저를 탁하고 내치기까지했다. 그럴수록 나는 아들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며 “한번만, 이번 한번만.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애걸복걸해야했다. 세살, 네살, 다섯살이 돼도 이렇게 먹여야한다면? 겁이 덜컥 났다. 식사 버릇이 엉망인 아이로 자랄까봐 아찔했다.
아이 밥을 먹일 때마다 씨름 한판씩을 한다는 엄마들을 위해 시중에는 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아이가 잘 먹는 음식의 레시피에 관한 내용부터, 두뇌를 발달시키는 식습관까지.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것은 ‘아이 주도식’ 식사방식에 관한 책이다. 책의 요지는 고형식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음식을 손에 쥐고, 입에 넣고 하는 등의 음식 탐험에 나서는데 이 때 중요한 것이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줘야한다는 것이다. 수저로 밥을 떠먹이는 것 역시 지나치게 많은 도움을 줌으로써 아이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기회를 박탈한다고까지 책에서는 주장했다. 따라서 손으로 집어먹어도 개의치 말고 충분히 음식을 가지고 놀며, 맛을 음미하도록 하라는 것.
‘아이에게 밥을 먹인다’고 하지, 한번도 ‘아이가 밥을 먹는다’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게 이같은 아이 주도식 방식은 새로웠다. 수저만 손에 쥐어줬을 뿐, 곧장 뺏어 들어 먹이는데 급급했던 나는 철저히 엄마 주도의 식사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낮 동안 밥을 내가 먹이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일단 양이라도 듬뿍 채워줘야한다는 생각이 컸다.
“성호야, 밥 먹어 볼래? 여기 수저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감안해 따로 밥을 먹었던 아이는 요즘 가급적 엄마, 아빠가 밥 먹는 시간에 같이 먹으려고 한다. 엄마, 아빠의 먹는 모습을 관찰해 모방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먹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수저를 쥐어든 아이는 정말로 수저로 놀기만 할 때가 많다. 같은 식탁에서 먹다보니 엄마 아빠가 먹는 맵고 짠 음식을 달라고 보채는 일 역시 잦아졌다.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이라도 하듯, 음식을 손으로 휘젓고, 던지고 뱉는 일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스스로 밥을 먹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예전보다는 많이 느긋해졌다. 육아 선배들의 조언도 있었는데, 아이들 밥먹는 양을 가지고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많이 먹는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이 있으니 일주일 정도의 식사량을 가지고 평균을 내는게 좋다는 조언이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아이 밥을 먹이다 더 더워지는 엄마들이 힘을 냈으면, 지금의 식습관이 어쩌면 아이 평생의 식습관을 좌우할 수 있으니 인내심을 더 발휘할 수 있길. 나 역시 그럴 수 있길 다짐해본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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