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구립 어린이집에 만 2세 유아를 보내고 있는 A씨(31)는 최근 아이의 소풍 현장을 찾았다 기겁하고 말았다. 어린이집에서 소풍 장소까지 아이가 타고온 차량에 아동용 안전벨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3명의 아이를 성인용 벨트 하나에 묶어 태웠다는 것이다. 도착 시간을 감안하면 고속도로를 경유해 때로는 시속 100km 이상 달린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털컥 내려 앉았다.
A씨는 즉각 어린이집에 항의했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대부분 어린이집이 자체 차량이 아예 없거나 부족한 상황이라 소풍이나 견학시에는 외부 차량을 빌려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걸어서 통학하는 아이까지 태워야 하니까, 통학차량만으로는 부족해서 차를 빌릴 수 밖에 없다”며 “임대 차량 차주에게 아동용 안전벨트 설치를 요구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A씨는 행정기관에 문의했지만 “대여 차량의 안전조치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그는 “소풍 장소가 먼 곳이면 아예 안보낸다는 어머니도 봤다”며 “수시로 외부에서 체험학습이 이뤄지는데 불안해서 보내겠냐”고 말했다.
소풍이나 견학을 위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빌리는 차량에 대한 규제가 미흡해 어린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교육기관에서 통학을 위해 정기적으로 운용하는 차량에는 안전기준이 법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는 반면 한달에 한 차례 꼴로 외부 체험학습을 위해 빌리는 차량은 안전 규정 없이 방치되고 있다.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기준은 지난해 1월 29일 도로교통법 개정(이른바 ‘세림이법’)을 통해 마련됐다. 2013년 3월 청주에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치여 사망한 아동의 이름을 붙여 만든 이 법에서 통학차량은 안전벨트 장착과 보호자 동승 등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적용 대상이 ‘통학 차량’에 한정돼 있고 일시적으로 이용되는 대여차량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매일경제 취재 결과 교육기관에서 외부 활동용 대여차량에 의해 발생한 사고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통학차량과 달리 신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매년 보건복지부가 발간해 어린이집 운영 지침이 되는 ‘보육사업안내’에도 임대 차량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 어린이집을 담당하는 서울시 관계자는 “지자체가 보육사업안내에 없는 규정을 함부로 만들 수 없다”면서 “임시 차량에도 교육을 받은 보육 교사가 동승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안이한 입장을 보였다.
이같은 조치에 학부모들은 명확한 안전 규정 없이 교사들에게 안전관리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성토했다. 5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B씨(33)는 “교사만 믿고 안전벨트가 미비한 차에 아이를 태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한탄했다.
허억 가천대 안전교육연수원장은 “아이들이 몇 번 탑승한다고 해서 모든 차량을 어린이 운송용 차량 기준에 맞춰 개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미취학 아동이 탑승할 경우 차량 운용 업체가 영유아용 카시트를 설치하도록 법적 정비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 원장은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우선 유아는 전용 카시트에 앉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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