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개인사이자 기업사였다.
28일 밤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故) 최종건 SK 창업주 부인인 노순애 여사 일대기다. 1949년 최 창업주와 결혼한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졌고, 전쟁 잿더미 속에서 찾아낸 인견 한 토막으로 SK그룹을 일으켰다.
재계에서는 노 여사를 조용한 ‘SK 창업 내조자’로 기억하고 있다. 신실한 불심(佛心)으로 헌신적이지만 단호하게 집안 단속에 나섰고, 이 때문에 SK그룹은 다른 재벌가와 달리 형제간 갈등이 불거지지 않았다.
‘형제의 난’으로 갈기갈기 찢기며 내상을 입은 재벌가가 수두룩했지만 SK는 노 여사의 철저한 집안 관리로 이같은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
결혼은 신혼 생활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노 여사는 1949년 두 살 연상 최종건 창업주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했다. 그해 9월 서울이 수복된 후 집으로 돌아온 최 창업주는 노 여사와 함께 처가가 있는 용인으로 향했다. 당시 최 창업주 부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공장을 걱정하는 대화를 나눴고, 노 여사가 서울 창신동 창고에 사뒀던 인견을 챙겨보라는 얘기를 꺼냈다. 이에 최 창업주는 곧바로 창고에 들러 폐허 속에서 인견사 한무더기를 찾아냈고, 이게 오늘날 SK그룹을 일으킨 종잣돈이 됐다.
노 여사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무척 꺼려했지만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수많은 집안 대소사를 챙겼고 직원들 식사도 손수 챙겼다. SK그룹 관계자는 “노 여사 내조가 있어서 최 창업주가 기업 활동에만 전념하며 선경직물 공장을 점차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 여사는 보살계까지 받은 믿음 깊은 불교신도다. 최 창업주가 1973년 폐암으로 별세한 후에는 줄곧 불공을 드리며 명복을 빌었고, 불심으로 일가친척의 화목을 일궈냈다. 2002년 둘째 아들 최신원 회장과 함께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인 ‘선경최종건재단’을 설립하고 후학 양성과 사회봉사활동에 나섰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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