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인 내게 세상은 좋다가 나빠진 거지만, 새로운 세대에게 이 세상은 어차피 힘든 거였다. 강한 부정 속에서 긍정이 자라난다고 했다. 지금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딱 그렇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새로운 세대의 움직임을 소개한다.
호황과 꽃길의 시간을 거친 X세대
돌이켜보면 X세대 범주에 속하는 나와 같은 이들은 많은 것을 부족함 없이 누리며 살아왔다.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며 대한민국 경제는 호황기를 맞이했고, 당시 대학생이던 우리는 미래를 구상하기보다는 현재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차피 미래는 꽃길이라 확신했으니까. 선배들을 예로 들자면, 대충 공부하고 졸업장을 취득한 이들도 번듯한 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취업하는 걸 보아왔다. 그러니 대학생활을 즐기면서 보내고, 미래도 자연스럽게 보장받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더욱이 어학연수, 배낭여행 등이 트렌드로 번지는 시기였다. 그렇게 세계 문물을 경험한 이들은 돌아와 훨씬 더 자유로운 세대론을 펼쳐냈다. 모든 게 풍족한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MF 외환위기라는 시련이 코 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이 IMF조차도 결과적으로 잘 넘어갔고, 이후 안정화된 나라는 호황이 지속되는 듯했다. 하지만 세기말을 보내고 21세기가 도래한 현재, 과거와 같은 물질적이고 동시에 정서적 호황기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한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극중 부모들의 대화 속에서 당시 은행 이율이 고금리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저축만 해도 연 10%가 훌쩍 넘는 이자를 받았다. 그러니 그때는 은행에 돈을 저축하기만 해도 재산이 증식되는 ‘호황’이었다. 쌓인 자금으로 집과 땅을 샀고, 자본은 더욱 더 확장되었다. 지금은? 결코 그럴 수 없는 시대다. 저축으로 자본이 축적되긴 하지만 증식되진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경제의 성장률 자체도 낮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를 맞이한 과거 세대는 현재를 불황이라고 표현한다. 뭐든 비싸지는 고물가 시대, 돈 빌리면 갚아야 할 이자가 더 커지는 고금리 시대, 달러나 유로로 환전할라치면 초라해지기만 하는 고환율 시대. 하지만 1990년 중후반 출생자인 Z세대(Gen-Z)의 반응을 살펴보면 조금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이 불황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Z세대는 출생 이후 한번도 호황이라는 걸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젠지가 성인이 된 이후부터 호황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우하향의 시대’라고들 한다. 경제활동을 펼칠 인구마저 줄어들고 있다. 아이를 출산해보니 번 돈보다 들어가야 할 돈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 출산율이 저조해진다. 경제도 점차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이런 환경은 청년들에게 취업난을 선사한다. 우리네 아버지 시대만 하더라도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분명 있었다. 한 회사에서 정년 퇴직의 영예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그런 영예로움은 없다. 더욱이 직장 생활 하면서 꼬박꼬박 떼 가는 연금조차 미래에는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이 분분하다. X세대에게도 노후는 버거운 짐이지만, Z세대에게 스스로를 부양해야 하는 셀프 부양 전망은 더 큰 우울감을 선사한다. 여기에서 Z세대와 함께 분류되었지만 확연히 다른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유행했던 10여 년 전 트렌드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호황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헬조선’,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표현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불황이 스스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지극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탓에 당시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는 좌절과 자조가 뒤섞여 있는 것이 당연했다.
‘욜로’와 ‘플렉스’의 밀레니엄 세대
밀레니얼 세대에게 미래는 ‘어렴풋하고 불확실한 어떤 것’이었다. 그토록 미래를 위해 스펙이라는 걸 쌓으면서 노력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빈번한 좌절이었다. 이 탓에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건 꿈조차 꿀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었다. 결국 이 조선 땅은 지옥과 같은 ‘헬조선’으로 통칭되어 불리게 됐다. 미래가 없으니 현재라도 잘 살자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이 주창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처럼.그래서 2010년대 최고의 키워드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였다. ‘한 번뿐인 인생! 폼 나게 살아보자’라는 거였다.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서 원하는 걸 사는 ‘탕진잼’ ‘플렉스’ 같은 단어들이 함께 트렌드로 떠올랐다. 덧붙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표현한 갓 구운 빵 냄새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과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찾아내는 행복의 개념에 몰두하기도 했다. 이렇게 밀레니얼 세대가 받아들인 현대는 비관 속에서 옅은 희망을 찾는 조금 더 자조적 실천에 가까웠다.
그런데 Z세대는 이러한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애초부터 호황이라는 걸 경험해보지 못한 이 세대는 어떤 힘든 일에 부딪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가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 시스템으로의 진입이 힘들고 두터운 장벽이라는 걸 느꼈기에 비관과 좌절을 모티브로 라이프스타일을 발전시켰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는 회사, 조직 등으로 일컬어지는 규범적 범주 이외에도 개인이 더 개인화되는 초개인화시대의 일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건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더불어 파생된 또 다른 직업이기도 하다. 그건 바로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1인 미디어와 SNS 플랫폼이다. 굳이 스펙을 쌓고 조직에 편입되지 않아도, 남들보다 더 잘 벌고,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여기에 그들은 과거 풍족한 시대의 자유를 경험한 X세대(가 부모일 확률이 높다)에 의해 자라났다. 그들은 자녀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 지지하는 세대다. 미디어를 통해 접해 본 적 있지 않는가? 10대 청소년이 온라인 스토어를 열어서 사장님이 되었다는, 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성장 환경 속에서 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에 비해 조금 더 확장된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진로 자체가 다양해졌다. 그들이 살아왔고, 살아갈 과거와 현재에 어차피 호황이라는 충분과 충족의 단어는 없었다. 이게 Z세대에게 덧씌워진 운명의 굴레다. 사실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개척할 수 있는 기회는 다른 면에서 조금 더 열려 있다. 여기에서 밀레니얼이 현재를 받아들이는 상황과 Z세대가 품는 상황의 차이가 발생한다.
‘럭키비키(‘Lucky’와 아이돌 장원영의 영어 이름 ‘Vicky’의 합성어)’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 단어에 현 세대의 가치관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작은 것이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소확행)을 찾아 헤맸던 것에 반해, Z세대는 자신 앞에 다가온 어떤 사건, 일에 좀 더 긍정적으로 대처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득이 되고, 실이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굉장히 과장된 행복감을 표출하는 동시에 뭔가 일이 틀어졌더라도, 그것 자체를 비관하지 않고, 이걸 기회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 마인드를 내세운다. 선배 세대가 ‘이번 생은 망했으니 현재를 즐기자’를 모토로 살았다면, 이들은 눈앞에 닥친 수많은 선택 중 스스로에게 최선인 것을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많은 미디어들은 이와 같은 Z세대의 긍정적 마인드를 ‘포지티브 모멘텀’이라고 명명한다. 모든 일에 부정보다는 긍정의 고리를 덧씌우는 게 현 세대가 가진 삶에 대한 자세다. 어차피 망한 삶을 살기보다는, 항상 부정적인 것에 둘러 쌓여 자라온 세대가 더 능동적으로 살아보려는 일종의 실천적 행위 혹은 운동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포용하는 Z세대
부정 속에서 긍정을 찾아 헤매는, 그래서 인문학적 측면에서도 해석되는 새로운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더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생시킨다. 그 움직임 중 대표적인 게 ‘갓생’이었다. 2020년대를 주요 무대로 활보하는 Z세대들은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작더라도, 매일 꾸준히 쌓아서 이루어낸 성취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그래서 갓생이라는 키워드는 어차피 안 좋은 것들 속에서 성취해 낸 좋은 것 하나를 온전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최근 들어 ‘저속노화’라는 키워드도 자주 보인다. 40대 후반에 접어드니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좋은 음식을 어릴 때부터 먹을 걸’이라는 후회다. 이런 결과들을 바탕으로 Z세대는 청춘에서부터 노화를 미리 늦추려는 노력을 가한다. 정제 탄수화물보다는 통곡물을 챙겨 먹고,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하고,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스마트 기기를 조금이라도 멀리하려는 노력들이 그 사례다.
이와 더불어 최근 눈에 띄게 주목할 만한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낭만’이다. 가수 최백호가 ‘낭만에 대하여’를 목놓아 부르는 건 사실 지나간 노스탤지어에 대한 애틋함이었다. 하지만 Z세대가 추구하는 낭만은 한때 트렌드를 주름잡던 ‘뉴트로’와 유사하다.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의 것들이 되려 지금은 낭만적이고 신선한 어떤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린트 지도를 꺼내두고 즉흥적으로 여행 장소를 정하는 랜덤 여행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주름 잡으며 뮤직 페스티벌 로망을 불러일으켰던 록 뮤직에 대한 환상도 요즘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그 사례가 SNS에서 종종 발견되는 ‘#밴드붐은온다(밴붐)’이다. 지금 당장 한번 검색해보라. 이들이 록 뮤직을 얼마나 낭만적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Z세대는 과거의 화려했던 로큰롤 부흥기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접한 그 록 뮤직의 시대야말로 낭만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요약해보자면, 내가 속해 있던 X세대는 경제적 호황 속에 풍족함을 누리며 잘 살아왔다. 물론 IMF가 그들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 이후 점차 불확실성이 커졌다.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는 불투명한 미래가 가져온 좌절을 지금 현재를 즐기려는 자조로 방어했다. Z세대는 어차피 호황이라는 걸 겪어보지 못했기에, 불황 속에서 긍정성을 키우며 자신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려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변화들이 30년가량의 시간 속에서 요동쳐왔다는 것이다.
이제는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포용하려는 시대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아무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작동한 것이라 해도, 모든 것에 비관적인 삶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청춘의 상태를 오래도록 지속하며 천천히 미래를 받아들이려는 Z세대의 키워드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아니 나와 같은 기성세대조차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어차피 나와 당신을 포함한 모든 우리게도 보장된 미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0호(24.12.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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