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오늘은 어떤 날이었을까.
'오늘裏面'은 이러한 궁금증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뉴스와 사건들 속에서 울고 웃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오늘이면은 과거의 오늘이 가진 다른 의미를 추적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소외당하고 잊혀질 뻔한 사실들을 적습니다.
오늘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5년 전 오늘, 1월 26일은 故 이수현 씨가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꽃다운 생을 마감한 날입니다. 향년 26세.
2001년 1월 26일. 이수현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오후 7시 15분경, 신오쿠보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일본인 취객이 선로위로 떨어진 것을 목격합니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는 차가운 선로로 몸을 던졌습니다.
열차가 덮치기 전, 그에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7초’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몸을 피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선로에서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끝까지 열차를 멈추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이수현은 ‘순간’을 던져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그는 장래가 촉망받던 학생이었습니다. 평소 한일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93년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 후, 2000년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합니다. 두 나라의 교역과 문화교류에 있어 ‘확실한 1인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넜던 것입니다.
당시 꽃다운 한국인 청년의 희생 앞에 당시 일본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일본 정계는 그의 의로운 죽음에 존경을 표했고, 언론은 ‘살신성인’을 대서특필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2001년 1월 26일은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 잊을 수 없는 날이 됐습니다.
지난 2008년 개봉한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는 故 이수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사고 당시 일상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신윤찬 씨는 제작발표회에서 “수현이가 비록 꿈을 펼쳐보지 못했지만, 한일 친선 외교를 하겠다던 꿈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청년의 희생은 극도의 이기주의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 이웃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단절된 인간관계, 일본사회의 그늘을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외국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수현은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의 희생은 한일관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故 이수현 추모 모임과 장학회 등 민간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고,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시사회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열풍에 당시 일본에선 한국의 국민성을 본받자는 움직임까지 일었습니다.
세상을 떠난지 15년이 지났지만, 이수현의 고귀한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번 15주기 추모일에는 ‘의인 이수현’의 이야기와 아들을 잃은 뒤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애쓴 아버지 이성대, 어머니 신윤찬 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가케하시(架橋)> 시사회가 도쿄에서 열립니다. 영화 제목 ‘가케하시’는 누구라도 국적이나 민족을 넘어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을 잇는 ‘가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일관계는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해 타결된 위안부 합의는 일본의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논란을 불러오며, ‘합의파기’ 주장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으로 출국한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는 오늘 일본 국회에서 끔찍했던 참상을 증언할 예정입니다.
아베 총리에게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볼 수 있길 바라는 것은 모두의 바람일 겁니다. 차가운 철로로 몸을 던지던 순간 이수현의 마음속에는 그저 보편적이고도 당연한 ‘인간愛’ 만이 있었습니다.
[MBN 뉴스센터 한전진]
'오늘裏面'은 이러한 궁금증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뉴스와 사건들 속에서 울고 웃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오늘이면은 과거의 오늘이 가진 다른 의미를 추적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소외당하고 잊혀질 뻔한 사실들을 적습니다.
오늘의 역사를 통해서 지금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5년 전 오늘, 1월 26일은 故 이수현 씨가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다 꽃다운 생을 마감한 날입니다. 향년 26세.
2001년 1월 26일. 이수현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오후 7시 15분경, 신오쿠보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일본인 취객이 선로위로 떨어진 것을 목격합니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는 차가운 선로로 몸을 던졌습니다.
열차가 덮치기 전, 그에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7초’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몸을 피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선로에서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끝까지 열차를 멈추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이수현은 ‘순간’을 던져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사진=MBN
그는 장래가 촉망받던 학생이었습니다. 평소 한일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93년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 후, 2000년 일본으로 유학을 결심합니다. 두 나라의 교역과 문화교류에 있어 ‘확실한 1인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현해탄을 건넜던 것입니다.
당시 꽃다운 한국인 청년의 희생 앞에 당시 일본은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일본 정계는 그의 의로운 죽음에 존경을 표했고, 언론은 ‘살신성인’을 대서특필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2001년 1월 26일은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 잊을 수 없는 날이 됐습니다.
사진=MBN
지난 2008년 개봉한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는 故 이수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사고 당시 일상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신윤찬 씨는 제작발표회에서 “수현이가 비록 꿈을 펼쳐보지 못했지만, 한일 친선 외교를 하겠다던 꿈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청년의 희생은 극도의 이기주의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 이웃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단절된 인간관계, 일본사회의 그늘을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외국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졌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수현은 큰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의 희생은 한일관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故 이수현 추모 모임과 장학회 등 민간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고,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시사회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열풍에 당시 일본에선 한국의 국민성을 본받자는 움직임까지 일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세상을 떠난지 15년이 지났지만, 이수현의 고귀한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번 15주기 추모일에는 ‘의인 이수현’의 이야기와 아들을 잃은 뒤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애쓴 아버지 이성대, 어머니 신윤찬 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가케하시(架橋)> 시사회가 도쿄에서 열립니다. 영화 제목 ‘가케하시’는 누구라도 국적이나 민족을 넘어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을 잇는 ‘가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일관계는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해 타결된 위안부 합의는 일본의 진정성 없는 사과라는 논란을 불러오며, ‘합의파기’ 주장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으로 출국한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는 오늘 일본 국회에서 끔찍했던 참상을 증언할 예정입니다.
아베 총리에게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볼 수 있길 바라는 것은 모두의 바람일 겁니다. 차가운 철로로 몸을 던지던 순간 이수현의 마음속에는 그저 보편적이고도 당연한 ‘인간愛’ 만이 있었습니다.
[MBN 뉴스센터 한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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