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9·15 노사정대타협 파기와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한 것을 계기로 정부가 확정지은 근로계약해지·취업규칙 변경 등 2대 지침은 ‘쉬운 해고·쉬운 임금삭감’이라는 노동계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우려와 달리 업무능력과 관련한 ‘통상해고’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후 교육훈련·배치전환 기회 등의 절차상 전제조건이 까다롭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절차 역시 노사간의 충분한 협의을 거쳐야 하며, 동종업계 상황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22일 2대 지침과 관련한 정부의 확정 지침안을 발표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11일 1차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30일에는 2차 전문가 토론회를 여는 등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해왔다. 고용부는 “2대 지침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 5회, 전문가 태스크포스(TF) 운영, 토론회 및 간담회 등을 모두 45회 실시하고 이를 토대로 기초안을 마련했다”며 “전문가들도 노동계 주장인 쉬운 해고가 아님에 공감했고, 간담회에서 제시된 의견도 최대한 지침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근로계약해지 지침에서 법률과 과거 판례를 볼 때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 등이 근로제공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이기에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해고의 정당한 이유는 ▲업무능력 결여 등을 이유로 한 통상해고 ▲업무명령 위반 등 비위행위를 이유로 한 징계해고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경영상 해고 등으로 명시됐다.
그러나 통상해고가 가능하려면 객관적인 평가 등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우선 평가방식과 관련해서는 평가제도 설계, 평가방법의 타당성, 평가 실행의 신뢰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업무 능력과 근무실정을 대상으로 평가항목을 세분화하고, 계량평가·절대평가 방식으로 객관성과 합리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복수의 평가자로 구성된 평가위원회, 근로자의 이의제기 절차 등도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전직명령 후 1년 이내, 노조 전임 등 파견 복귀 후 1년 이내, 업무상 재해로 인한 휴직 후 복귀 1년 이내, 출산·육아휴직 후 복귀 1년 이내 등 역량을 보여주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근로자는 평가대상에서 제외한다.
이같은 평가 후 저성과자로 분류된다면 근로자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키는 내용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며, 근로자의 적성과 업무가 맞지 않을 경우에는 배치전환으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이같은 절차를 거친 후에도 업무능력·성과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면, 업무능력 결여와 근무성직 부진을 이유로 통상해고가 가능하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통상해고는 새로 만든 제도가 아니다”며 “근로계약 본질에 입각해 통상해고의 인정사례와 기각사례를 명확히 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은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 입장이다. 그러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근로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변경이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변경 필요성, 노동조합과의 협의 노력 등 기준을 충족한다면 근로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한 셈이다.
취업규칙은 근로자가 준수해야 할 규율과 임금, 근로시간, 기타 근로조건에 대한 구체적 사항을 정한 것이다. 취업규칙 변경이 근로자에게 불이익 변경이라고 판단되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불이익변경은 사용자가 종전보다 근로조건을 낮추거나 복무규율을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사용자 측이 합리적인 임금피크제 도입안을 마련하고, 근로자의 동의를 얻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했음에도 근로자 측의 교섭 거부로 동의를 얻지 못했다면 ‘사회통념상 합리성’ 적용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사용자측 변경 필요성, 변경된 취업규칙 내용의 적정성·정당성,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노조와의 충분한 협의 노력, 동종업계의 상황 등 6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정년 60세 연장법(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 노사 모두에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개편 의무를 부여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변경 필요성의 요건은 충족한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정년연장법의 입법취지에 맞지 않는 큰 수준의 임금감액인지, 근로시간 단축과 복리후생 제도 등이 유지·확대되는지, 지역 내 동종업계의 임금감액 비율이나 합의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지 등 조건이 받쳐주면 근로자의 동의가 없어도 임금피크제 도입이 가능하다.
법률전문가들은 2대 지침이 노동계가 주장하는 ‘쉬운 해고, 쉬운 임금삭감’과는 거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규형 노무법인 남산 대표노무사도 “기업들이 해고를 하고 싶어도 그동안 판례를 분석해보면 한두달 만에 할수 있는 게 아니고 적어도 6개월이상 재교육을 해야하는 부담감이 기업에게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현장에서 악용될 소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노무사는 “경영상 해고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직원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2대 지침을 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승진 기자 / 장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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