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생 김지영(26)씨는 낮에는 대학 수업을 듣고 저녁엔 집 앞 카페에서 알바를 한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자정부터는 오는 18일에 있을 대기업 공채를 위한 인적성 시험에 대비한 인터넷강의를 듣는다. 시간이 촉박해 아르바이트를 줄여볼까 고민도 했지만 기출문제집과 인강(인터넷강의)을 신청하느라 쓴 카드값이 생각나 포기했다. 운이 좋아 인적성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면접때는 학원에서 ‘집중 컨설팅’을 받아야만 붙는다는 주변의 말에 벌써부터 학원비가 걱정이다.
당장 오는 17일 효성그룹, 18일에는 삼성그룹을 시작으로 하반기 대기업 공채시즌이 본격화한다. 하지만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은 이른바 ‘본게임’(인적성시험부터 최종 면접까지)이 다가오면서 앞으로 부쩍 늘어날 취업준비 비용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취업준비비용의 가장 큰 비중은 단연 사교육비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취업준비생 810명에게 ‘취업 사교육 비용 현황’을 물으니 월 평균 26만8600원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기간인 지난 8월과 9월 이들의 월평균 생활비가 52만2300원임을 감안하면 대학생과 취준생 대다수가 취업을 위한 사교육에 생활비 절반 가량을 쏟아 붓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취업사교육 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8.4%가 ‘부담된다’고 답했을 정도다.
이미 3개 기업에서 자기소개서를 제출해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다른 두 곳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김 모씨(29)는 최근 인적성 대비 문제집만 5권을 샀다. 각 기업마다 기출 문제집이 다 따로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막상 펼쳐보면 겹치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불안한 마음에 대기업 그룹별로 살 수밖에 없었다”며 “책 값만 10만원에 달하고 인터넷강의까지 들으면 독학으로 준비해도 수 십만원은 기본”이라고 하소연했다.
취업 컨설팅 학원을 찾는 취준생들의 경우 부담은 더욱 심각했다. 서울 강남 일대에 자리잡은 인적성시험과 면접 대비 취업 컨설팅 전문 학원 10여 곳엔 절박한 청춘들이 몰려있다. 4개의 분원을 가진 A학원에서 직접 상담을 받아보니 “취업때까지 보장해주는 프리미엄 패키지”를 권했다. 소수반은 146만원부터 있었지만 개인 레슨을 받으려면 200만원 선에 달했다. A학원은 “하루라도 빨리 학원수업을 들어야 한 달이라도 먼저 취업할 수 있다”며 “다른 경쟁자들은 지금도 컨설팅을 받고 있다”는 식의 ‘공포 마케팅’으로 취준생을 유혹했다.
학원에서 만난 유정연 씨(27)는 “인적성이나 면접은 기준이 모호하기때문에 혼자 준비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다”며 “대학 등록금을 또 내는 거냐는 부모님 말에 죄송스러웠다”고 말했다.
면접 노하우를 가르쳐준다는 일부 학원에서는 ‘성형’을 유도하기도 했다. 유 씨는 “대기업 인사담당관 출신의 강사가 코 끝이 좀 부드러웠으면 더 좋은 인상을 줄 것”이라고 말해 성형을 신중히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강남역 일대 성형외과엔 ‘면접때 붓기가 빠지려면 지금이 적기!’ 같은 홍보문구를 내걸고 취준생 집중 마케팅을 하는 성형외과들이 다수 성업중이다. ‘취준생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는 강남의 한 성형클리닉 관계자는 “필러와 윤곽주사, 물광주사 같은 쁘띠성형을 찾는 취업준비생들 수요가 많아 전문 상품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창순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소위 스펙을 걷어낸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본다”며 “채용선발 기준이 모호해지면서 불확실성에 내몰린 취준생들이 급하게 취업준비학원이니 성형외과에 달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업이 확실한 기준을 시그널로 줘야 청춘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착실히 준비할 수 있다”며 “주와 객이 전도된 현재의 취업 시장이 엉뚱한 사교육 시장만 만들어 청춘들에게 부담을 가중시켜나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배미정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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