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개방, 사법시험 폐지, 변호사 수 증가...’
향후 2~3년 안에 국내 법률시장에 불어닥칠 변화들이다.
국내 로펌업계의 역사는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광화문에 최초의 미국식 법률사무소가 문을 연 뒤, 80년대 경제개발과 더불어 로펌이 급증했다.
기업을 주 고객으로 하는 일감이 쏟아졌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법원이나 검찰 대신 곧바로 로펌에 뛰어드는 젊은 율사들도 많아졌다.
90년대부터는 전문 분야를 내세운 작은 부티크 로펌들이 생겨났고,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인수·합병(M&A) 등 복잡하고 거대한 자문 사건도 늘어났다.
그 사이 국내 로펌은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을 인정받을만큼 성장했지만, 점점 치열한 수임경쟁과 외국계 로펌의 공세로 향후 거대한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형로펌을 중심으로 저마다 생존과 도약을 위한 해법을 찾아나섰다.
◆전문성 강화가 해답.. 수십개 전문팀으로 헤쳐모여
‘로펌 이름값은 옛말, 이젠 분야별 실력’
시장 개방으로 외국 로펌의 공습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로펌들도 더이상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고, 분야별 1위 팀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김앤장은 최상위 수준의 각 분야 전문팀을 해외로펌과의 적극적인 협업 등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김앤장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활동범위가 전세계로 확장된 만큼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 유수의 로펌들과 공고한 협조 체계를 갖춰 일해왔다”며 “로펌시장 개방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사건을 로펌 내 소규모 팀들이 협업해 최상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조직 내 유연성도 강조된다.
로펌들은 변리사·회계사·노무사 등 전문 인력을 위주로, 저마다 세부 주제에 따라 수십개의 전문팀을 구성하고 있다.
임성우 광장 변호사는 “누가 수임한 사건이든 로펌 내에서 이를 가장 잘 처리할 수 있는 최고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입법컨설팅, 경제분석... 블루오션 개척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나선 로펌들은 이제 법을 만드는 과정에까지 자문을 하며 활동영역을 넓혔다.
최근 수년 새 입법컨설팅 분야가 커진 것은 정부의 각종 규제 강화로 규제입법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수많은 입법 과정에서 외부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정부의 수요도 늘었다.
‘입법지원’ ‘입법자문’ ‘법제컨설팅’ 등의 이름을 붙인 로펌 내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쌓아온 사건 경험과 법률지식을 활용해 법 제정 후에도 분쟁을 줄일 수 있도록 사전에 법안을 다듬는데 기여한다.
방위산업도 최근 로펌들이 주목하는 분야다.
방위산업 분야는 무기구입 등 대부분의 사안이 국가안보와 직결되다 보니 비공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각종 비리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또 접근성이 떨어지는 군 조직의 특성 상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
이에 로펌들은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에서 경력을 쌓은 법률전문가를 앞다퉈 영입하고 있다..
세종은 각종 전문분야의 최고 직위를 모두 거친 고등군사법원장 출신의 고석 변호사(55·연수원 23기)를 최근 국방·방위산업팀에 스카우트했고, 바른은 지난 2월 첫 여성 장군 출신의 이은수 변호사(50·군 법무관 9회)를 필두로 방위산업팀을 꾸렸다.
아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비법조인 외부전문가를 영입하기도 한다.
광장은 지난 7일 경제학자들을 영입해 캐피탈경제컨설팅그룹(CECG)을 세웠다. 초대 수장은 미국 UC버클리 출신으로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DOJ)에서 10여년간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신동준 대표가 맡았다.
신 대표는 “최근들어 각국의 공정거래 규제가 강화되고, 손해배상소송이 크게 늘면서 관련 사건에서 담합여부나 손해액 등을 산정하는 ‘경제분석’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며 “한국 기업도 철저한 경제분석으로 외국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응해 손해배상을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에는 신 대표를 비롯해 김앤장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20여년간 경제분석을 다뤄온 홍동표 박사와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유진수 숙명여대 교수, 정광수 존스홉킨스대 교수, 김진일 고려대 교수 등이 합류했다.
◆해외로 눈을 돌려라... 러시아까지 앞다퉈 진출
한편 종전에는 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머물렀던 해외진출 지역이 최근 러시아에까지 확장됐다.
러시아에 맨 처음 깃발을 꽂은 것은 율촌이다.
율촌은 지난달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롯데호텔에서 현지 정부 및 진출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5번째 해외사무소 개소식을 열었다. 앞서 2008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러시아 순방 당시 국내 로펌 최초로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율촌은 최근 롯데호텔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호텔 부지 인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롯데그룹의 모스크바 대형 쇼핑몰 인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한국기업과 러시아 국영공사의 합작프로젝트 중 가장 큰 규모 인 것으로 알려진 GS 홈쇼핑과 러시아국영통신공사의 홈쇼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5년 국내 로펌 최초로 러시아중앙아시아팀을 꾸린 법무법인 지평도 이달 초 모스크바 사무소를 열었다. 이는 국내 로펌 중 해외 진출에 가장 활발한 지평의 8번째 현지사무소이기도 하다.
포스코·코오롱·대상의 현지법인 설립 자문 등 지금까지 180여건의 사건을 맡았고, 향후 현지 대형로펌인 YUST와 제휴를 바탕으로 러시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법률자문을 제공할 계획이다.
지평은 유럽과 중동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배지영 변호사를 영국계 로펌 ‘핀센트 메이슨의 두바이 지사에 파견 보내기도 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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