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려 6시간이나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딸에게 줄 '출산 보따리'를 움켜쥔 한 할머니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2시께 부산시 서구 아미파출소로 한통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 한분이 보따리 두개를 들고 한 시간이 넘게 동네를 서성인다는 것이다. 출동한 경찰은 할머니를 만나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슬리퍼 차림에 보따리만 껴앉고 "딸이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경찰은 치매에 걸린 이 할머니가 인근 동네 주민일 것으로 판단하고 할머니를 아는 주민을 찾아 나섰다. 결국 수소문끝에 할머니를 아는 이웃이 나타났고, 딸은 놀랍게도 실제 부산진구의 한 병원에 출산해 입원해 있었다.
경찰은 할머니를 딸이 입원한 병원으로 안내해 신고가 접수된 지 6시간만에 모녀는 상봉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딸을 본 할머니는 곧바로 들고온 보따리를 풀면서 "어여 무라(어서 먹어)"는 말을 했다. 할머니가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놓치지 않았던 보따리 안에는 미역국, 나물반찬, 흰밥, 이불 등 출산한 딸을 위해 준비한 물품이었다. 온전치 못한 정신에도 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고생한 엄마를 생각한 딸은 그 자리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
경찰은 이 사연을 '치매를 앓는 엄마가 놓지 않았던 기억 하나'라는 제목으로 지난 17일 공식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소식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애잔하네요",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나 봅니다", "모성애는 무엇보다도 강하네요"라며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부산 = 최승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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