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5월 10일 공식 취임하면 행정기관 위원회를 향한 대대적 재정비가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현안 해결'을 앞세워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소속 위원회를 사상 최대로 급증시켰지만 비효율과 저성과로 위원회 무용론이 거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위원회 재정비를 국정과제에 담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27일 인수위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다수의 위원회가 신설되고 굵직한 현안을 위원회에 맡겼지만 제대로 성과를 못낸 사례가 많았다"며 "국민의힘은 대선 전부터 이 같은 '위원회 공화국'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인수위도 '다이어트'를 추진하고 있다. 국정과제에 포함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무사법행정 분과 인수위원들은 지난 24일 행정안전부의 업무보고를 받으며 "위원회 재정비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적극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부 소속 각종 위원회는 작년 6월말 기준 622개다. 중앙정부 위원회는 대통령·국무총리, 중앙행정기관에 설치된 위원회로 행정을 담당한 곳이 42개, 자문 역할 위원회가 580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말인 2012년 505개에 비해선 약 120개, 박근혜 전 대통령(2016년, 554개) 때와 비교해도 약 70개 많다. 대통령 스스로 "위원회 공화국 맞다"고 확인했던 노무현 전 정부(약 570개)보다도 많은 수다. 지자체 위원회 수는 가장 최신 집계인 2020년 말 현재 2만8071개나 된다. 2015년 말의 2만1729개보다 6342개 급증했다. 연평균 1268.4개씩 증가한 꼴이다. 올해는 이미 위원회 수가 3만개에 근접했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정부 위원회는 민간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들을 참여시켜 사회적 대타협을 토대로 한 정부의 의사 결정을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러 부처가 관여하는 사안에 대해 부처간 칸막이를 걷어내고 통합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후 업무지시 1호가 일자리위원회 설치였을 정도로 위원회를 통한 현안 해결을 선호했다.
문제는 우후죽순 돋아난 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622개 중앙정부 위원회 가운데 회의를 1년간 한 차례도 열지 않은 곳이 11.4%(71개)에 이른다. 회의를 5회 미만으로 연 곳을 모두 더하면 375개로 60%가 넘는다. 성과도 저조하다. 노동·복지 정책의 사회적 대타협 기구로서 문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민주노총이 불참하면서 노동계가 시작부터 등을 돌렸다. 경사노위는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최종 과제도 합의하지 못해 국민연금 개혁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을 받는다. 2019년 신설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는 가축 수를 줄여 축산 농가를 돕자는 적정 가축 사육두수 정책과 영농형 태양광 발전 확대 방안을 주창했다가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축산단체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부 위원회는 보은성 인사 논란이나 정권 거수기 우려도 제기됐다. 현 정부들어 신설된 'A'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A위원회는 시작부터 역할이 불분명했던데다, 정권 창출에 앞장선 인사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만든 위원회라는 뒷말이 무성했다"고 전했다. 7월 출범 예정인 국가교육위원회는 위원 21명 중 대통령과 여당 몫으로 과반을 넘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난해 근거법(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 과정에 국민의힘이 불참했다. 다만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국민의당 대선 후보 시절 교육부의 역할을 과감히 축소하고 국가교육위를 중장기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기구로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국가교육위는 새 정부에서도 위상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의 위원회 다이어트는 이명박 정부 수준으로 과감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2008년 2월 39개 위원회를 정비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 33개를 국회에 제출하고 6개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이어 그해 5월에는 정부 주도로 273개 위원회를 통폐합하는 내용의 '위원회 정비계획'을 발표·실시했다. 당시 구조조정에 힘 입어 2008년 5월 573개였던 중앙정부 위원회 수는 2010년 431개까지 감소했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1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172석으로 과반을 점하고 있다"며 "상당수 위원회가 법률을 근거로 설치돼 위원회 수를 대폭 줄이려면 민주당과의 험난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일자리위원회와 대통령 직속 자치분권위원회 등 존속기한이 끝나가는 위원회가 폐지 1순위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자리위원회는 오는 5월, 자치분권위원회는 내년 3월 존속기한이 끝난다. 반면, 국가균형발전위원회나 4차산업혁명위원회처럼 오히려 존재감이 커질 위원회도 있다. 인수위는 4차산업혁명위를 국가디지털혁신위원회로 확대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종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