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끝난듯 보였던 단일화는 물밑에선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겉으로는 지난 27일 단일화 결렬 선언 후 '끝났다'는 메시지를 내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서로를 강하게 공격했지만, 양측을 대표해 공세를 퍼부었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과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계속 협상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두 후보는 그동안 지인을 통해 만남을 시도했지만 불발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쌓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심야회동에서 두 후보는 이같은 엇갈림이 상대방의 의도가 아님을 깨닫고 전격적인 야권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지난 27일 윤 후보가 기자회견을 열어 그간의 단일화 과정을 '폭로'하고,. 안 후보가 "답변을 안한 쪽은 국민의힘"이라면서 "(국민의힘 최종 제안이)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내렸다"고 할 때만 해도 야권 단일화는 완전히 끝난듯 보였다. 투표용지 인쇄시한을 이미 넘겼다는 점, 이 때문에 단일화를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지지자들은 낙담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대리인이었던 장제원 의원과 이태규 의원은 언론과 만나 서로를 향해 공격을 했다. 특히 안 후보를 대신해 협상을 했던 이 의원은 언론에 "그나마 조금 있었던 가능성도 완전히 없어졌다""간이라도 빼줄 듯 가더니 안되면 '까서' 타격주겠다는 거냐. 그게 단일화 진성성 있는 사람 태도냐"고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뒤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협상을 했다. 두 사람은 결렬 선언 후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다. 특히 2일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 두 사람은 후보간 전격회동에 대해 합의를 해놨고, 후보들에겐 토론회가 끝난 후 통보를 했다고 했다. 장 의원은 매일경제 통화에서 "27일 단일화가 결렬된 거처럼 보였지만, 이태규 선배와 나는 끈을 놓지 말자고 했다. 인간적인 관계는 유지하자고 했다"고 설명하면서 "어제(2일) 밤 9시에 이 선배와 만났고, 후보 두 분이 만나면 해결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각각 후보에게 전화해서 우리 매형집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했다. 장 의원의 매형은 성광제 전 동그라미재단(舊 안철수재단) 이사장으로, 안 후보가 카이스트 교수이던 시절 가깝게 지내 안 후보가 출연한 재단의 이사장까지 맡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두 후보는 비밀리에 움직였다. 경호 인력들도 철수시킨 후 밤 12시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성 전 이사장의 자택에 모였다. 새벽 2시반까지 이어진 만남에서 후보들은 단일화에 '통큰' 합의를 한 것이다.
장 의원은 "결국 신뢰회복이 핵심이었다. 안 후보는 안 후보대로 윤 후보와 친한 사람의 소개로 윤 후보를 만나러 갔다가 윤 후보가 나오지 않은 적이 있고, 우리 후보도 같은 상황을 겪은 적이 있더라"고 회상하면서 "그러면서 오해가 쌓인 것인데, 윤 후보가 "당신이 나를 믿고 내가 당신을 믿으면 성공한 정권 만들수 있다. 그게 당신의 미래 담보 아니냐. 나는 5년후에 끝나지만 윤석열 정권이 성공하면 그 모든 공은 당신에게 간다"고 하니까 바로 얘기가 끝났다"고 전했다. 그는 "거래같은게 없었다. 윤 후보의 신뢰를 주는 발언이 안 후보 마음을 흔들었고, 안 후보가 "됐다. 충분하다"고 하며 공동선언문을 쓰기 시직했다"고 덧붙였다. 새벽 2시반부터 쓰기 시작한 합의문은 6시50분에야 완성됐다.
결국 일각에선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인 장 의원을 협상 파트너로 내세운 데 대해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내놨지만, '윤핵관'으로서가 아니라 윤 후보의 심중을 잘 아는 인사 중 안 후보와 밀접하게 접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사였기에 협상대리인으로 내세웠다는 것이 중론이다. 매형인 성광제 전 이사장과의 관계도 있지만, 안 후보는 2016년 총선을 준비하면서 장 의원의 형인 장제국 동서대 총장을 공천하기 위해 공을 들인 적도 있다. 장 의원 역시 "안 후보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가 우리 아버지가 항암치료 받을 때 많이 도와주셔서, 우리 누나 부부와 안 후보 부부가 넷이 만나고 친하게 지냈다"고 설명했다.
결국 '단일화'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안 후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면서, 윤 후보가 가장 믿었던 장 의원과, 그런 장 의원과 '선후배'사이를 유지하며 안 후보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 의원이 협상인으로 나섰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당 핵심관계자는 "안 후보와 장 의원은 원래 사이가 좋았고, 이태규 의원과 장 의원도 가까운 사이"라면서 "두 사람 모두 2000년대초부터 같은 당에 몸담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선거를 함께 도우며 선후배하던 사이"라고 설명했다. 장 의원이 '선수'로는 3선으로 재선인 이 의원보다 위지만, 항상 '선배'라고 칭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윤균 기자 /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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