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일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가장 먼저 할 일을 묻는 질문에 대해 "50조 원 이상의 긴급재정명령에 서명하는 게 될 거 같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날 지역민영방송사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너무 위기적인 상황이고 국민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라고 긴급재정명령 발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 후보가 주장하는 긴급재정명령 발동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 헌법 76조는 긴급재정명령 발동 요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하려면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해야 한다.
코로나19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 국회를 소집할 여유는 충분히 있다. 이미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정부가 수차례 마련하고 국회가 이를 의결해 집행한 바 있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다수당이다. 그 당의 대선 후보가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납득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싶다. 국회에서 야당이 반대해 대통령 뜻대로 지원금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다고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한다면 국회를 무시하는 행위다. 3권 분립의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긴급명령 발동 요건을 보다 구체화한 바 있다. 1993년 8월 김영삼 정부에서 발동된 금융실명제 조치의 위헌 여부를 묻는 심판 청구에 대해 "국회의 폐회 등으로 국회가 현실적으로 집회될 수 없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려서는 그 목적을 달할 수 없는 경우에 이를 사후적으로 수습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유지·회복하기 위하여 위기의 직접적 원인의 제거에 필수불가결한 최소의 한도 내에서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대처는 국회의 집회를 기다려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은 분명히 아니다. 50조 원 긴급 재정명령 발동은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개입도 아니다.
코로나19도 헌법이 규정한 법과 절차에 따라 민주적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회와 대통령이 공동 책임으로 대처할 일이다. 국회를 무시하고 대통령이 앞으로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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