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름 표기의 국제적 기준이 돼온 국제수로기구(IHO) 표준 해도집이 특정 바다 명칭과 관련해 앞으로는 동해·일본해 같은 고유 이름 대신 '번호'로 표기하기로 했다. 표준 해도집은 일본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주장하는 주요 근거가 돼왔으나 새로운 표기법 도입에 따라 앞으로는 그러한 주장이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에 따르면 IHO 회원국들은 지난 16일 화상으로 개최된 'S-23의 미래에 대한 비공식 협의 결과 보고' 총회 토의에서 기존 해도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S-23)를 대신하는 개정판 'S-130'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개정판 핵심은 바다를 명칭 대신 고유 식별번호로 표기한다는 것이다. 이번 총회 안건은 회원국 회람을 거쳐 오는 12월 1일께 공식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그간 일본해를 단독 표기해왔던 S-23이 향후 (식별번호 표기 형식인) S-130으로 이행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리 정부가 IHO라는 다자 외교무대에서 1997년부터 이어온 끈질긴 노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른 당국자는 "기존에는 다른 나라나 기구에 일본해 수정 요청을 하면 IHO 해도집을 근거로 들며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제 국제표준이 '번호표기'로 수정된 만큼 정부의 수정 요구에 더 힘이 실리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제강점기였던 지난 1929년 초판이 나온 S-23은 그간 동해를 '일본해'로만 독자 표기해왔으며, 일본은 이를 근거로 일본해 명칭이 국제표준이라는 주장을 고수해왔다. 1997년부터 '동해 병기'를 주장해온 한국은 지난 2017년부터 북한, 일본과 본격적으로 논의를 진행했으나 서로 의견차가 심해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IHO 사무총장이 번호 표기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면서 절충점이 마련됐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선 IHO 총회 결과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일본해라는 표기를 인정했으며 이는 한국과 여론전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 기존 S-23에는 일본해 명칭이 그대로 남게됐다는 점에서 일본의 주장이 인정됐다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동해라는 표현이 단 한곳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은 일본의 주장이 통한 성과"라며 안도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7일 전했다. 또 다른 일본 정부 관계자는 "디지털판에는 전 해역의 명칭이 기재돼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해라는 호칭문제에는 직접적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그러나 IHO는 기존 S-23은 역사적 변천사를 보여주는 출판물로만 공개한다는 방침이며, 앞으로 국제표준은 신형 S-130을 따른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일본 정부의 '국내용 여론전'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IHO 사무총장 보고서상 제안에 'S-23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역사적 변천을 보여주기 위해 기존에 나온 출판물로서만 공개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앞으로 S-23은 추가로 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 = 정욱 특파원 / 서울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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