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한국·일본 양국 정상들과 첫 전화통화가 11일(현지시간) 이뤄졌다. 양국에 모두 동맹 강화를 강조하면서 한국엔 '린치핀(linchpin)', 일본엔 '코너스톤(cornerstone)'이란 단어를 썼다.
바이든 당선인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와 번영의 '린치핀(linchpin)'으로서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일본에는 "기후변화와 전 세계 민주주의 강화, 번영하고 안전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코너스톤(cornerstone)'으로서의 미일동맹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고 했다.
린치핀과 코너스톤, 둘 중 뭐가 더 중요하냐고 묻는 건 우문이다. 다만, 이 두 단어가 앞으로 이 지역 정세의 열쇠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 일본에서 한국으로'린치핀'이동
린치핀(linchpin)은 마차나 수레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이다. 없으면 바퀴가 굴러갈 수 없으니 그만큼 핵심이다.
한국을 그렇게 중요한 지역 안보동맹의 '린치핀'이라고 불렀던 이는 사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 기간 중에 만난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우리나라의 이명박 대통령은 두 나라의 미래를 바꿀 두가지 중대한 합의를 한다. 한미 전작권 전환 시기를 연기하고,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시작하기로 한 게 바로 그 둘이다. 이 중대한 합의를 발표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한국·미국 뿐만 아니라 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이라고 처음으로 추켜세웠다.
한국이 린치핀이 되자 정작 난리가 난 곳은 일본이었다. 린치핀은 미·일동맹 관계에서 사용돼왔던 고유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무려 11년간 미국 대사를 지내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는 마이크 맨스필드 대사(재임기간 1977년~1988년)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도쿄에서 시작되고 도쿄에서 끝난다"며 일본을 미국의 최우방, 린치핀이라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 70년대이후 줄곧 미국의 린치핀이었던 일본이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러 한국에 린치핀 자리를 뺏긴 셈이 돼버렸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을 시작으로 클린턴 국무장관, 트럼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린치핀'이라 부르자 한때 일본 외교가에는 영어사전을 뒤지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린치핀이라는 영어단어에 's'를 붙여 복수형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 그러니까 일본 이외에 또다른 린치핀이 있을 수 있느냐 아니면 린치핀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교체된 것이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던 것이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과의 동맹을 아시아의'코너스톤'으로 고쳐부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년 후 다시 정권을 잡은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도 일본 스가 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일본을 지역내 동맹의'코너스톤'이라 칭했다. 코너스톤은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돌을 뜻하는 말로,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임은 확실하다.
◆린치핀과 코너스톤 사이,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린치핀' 한미동맹과 '코너스톤' 미일동맹중 어떤 동맹이 중요한가를 따진다면 누가 미국과 더 친하냐를 묻는 유치한 질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 대신 한국을 '린치핀'이라 부르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는 지는 되짚어볼만하다.
지난 2010년부터 한미동맹의 절정이라 할만큼 양국이 가까웠던 데는 양국의 이해관계와 외교력은 물론이고,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호감이 크게 좌우했다. 두 대통령은 서로를 '친구'라 부르던 사이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때 오바마 대통령과 한식당에서 불고기를 먹고, 디트로이트까지 가서 미국산 자동차에 탑승하는 등 어느 정상때도 보지 못했던 이벤트를 연출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연설때마다 한국의 교육·경제를 칭송하기 바빴다. 반면 당시 미일관계는 악화 일로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내세운 이후 양국 관계는 1990년대 무역분쟁 이후 최악이라는 평을 들어야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당선이 확실시 되자마자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부터 꾸리는 바이든 당선자의 모습은 국민의 생명이 최우선이라며 코로나 대응에 두팔 걷어붙였던 문대통령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이제 한미관계에 첫단추는 끼워졌다. 전작권 전환·종전선언·방위비협정 등 한미관계에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려면 시작은'린치핀'에서부터여야 한다. 동맹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바이든 시대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린치핀 한국이 미국과 공유하고 있는 최우선의 가치는 민주주의다. 중국의 지재권 침해, 인권문제 등 보편적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나타난다면 린치핀의 입장에서 선택을 내려야할 순간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중국은 앞으로 한국외교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입장에서 '린치핀이냐 코너스톤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면 결국 누가 더 중국 문제를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지경학적 관점]은 매일경제 외교안보팀이 지면에 다 싣지 못한 취재현장의 이야기들을 담은 코너입니다. 경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매경은 한반도와 우리를 둘러싼 주변국의 정세를'지경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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