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의료 등 전문가와 장애인·노동자 등 소수자를 대표해 20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입성했던 47명 의원 중 20명이 21대 총선에 출마해 재선에 도전한다. 최근 두 번의 총선을 보면 직전 비례대표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는 비율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각종 명분을 내세워 비례대표 '인재 영입'에 나서지만, 전문성을 갖춘 정치인으로 키우기 보다는 한 번 쓰고 '용도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20대 비례 의원은 모두 20명이다. 20대 총선 때 당선됐던 정당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 5명,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 4명, 국민의당 7명, 정의당 4명이다. 20대 총선 당시 '녹색 바람'에 힘입어 비례대표를 13명이나 당선시켰던 국민의당이 해체된 가운데 21대 총선에 도전하는 국민의당 출신 비례 7명은 통합당 소속 4명, 민생당 소속 2명, 새로 창당한 국민의당 소속 1명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판세를 보면 4·15 총선에 도전장을 던진 20대 비례 의원들의 선거 행보도 쉽지 않아 보인다.
(왼쪽부터) 이재정 민주당 의원, 김현아 통합당 의원, 이태규 국민의당 전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모두 5명 비례 의원이 지역구 도전장을 냈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5명 중 이재정 의원 정도만 '우세'로 분류된다. 이 의원은 현역 의원 3명 간 맞대결이 펼쳐지는 경기 안양 동안을 여론조사(SBS·입소스, 4월 4~8일 동안을 유권자 506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에서 55.6% 지지율을 얻어 5선 심재철 통합당 의원(34.1%)과 비례 초선 추혜선 정의당 의원(3.2%)을 여유 있게 앞섰다. 서울 서초을 박경미 의원, 경기 화성갑 송옥주 의원, 경기 용인병 정춘숙 의원은 오차범위 내 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북 구미을에 출마한 김현권 의원은 최근 여론조사(대구 CBS·영남일보·KBS 대구·에이스리서치, 4월 5일 구미을 유권자 519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3%포인트)에서 보수 텃밭 한계를 극복하지 못 하고, 김영식 통합당 후보(49.1%)에 19.8%포인트차 뒤진 29.3%을 기록했다.통합당은 경북 상주·문경에 출마한 임이자 의원이 여유 있게 앞서가고 있다. 경기 고양정 김현아 의원은 민주당 후보인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와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치열한 경쟁 중이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2일 SBS·입소스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에서는 이 후보가 49%로, 김 의원(31.6%)을 앞섰다. 그러나 가장 최근인 지난 7일 CBS·국민일보·조원씨앤아이가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에서는 김 의원이 46.4%로 이 후보(42.2)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이에 비해 경기 파주갑 신보라 의원과 인천 동·미추홀갑 전희경 의원은 불리한 판세 속에 막판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 국민의당 비례대표 중 청주 청원 김수민 의원, 서울 중랑갑 김삼화 의원, 세종갑 김중로 의원, 서울 노원을 이동섭 의원은 통합당 소속으로 지역구에 출마했다. 이들 4명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직까지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장정숙 의원과 최도자 의원은 각각 민생당 비례 5번과 7번으로 재도전에 나섰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안철수 대표가 새로 창당한 국민의당 소속으로 21대 총선에 나선 이태규 전 의원이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 8번으로 당선된 이 전 의원은 바른미래당 탈당 과정에서 '셀프 제명'한 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근 민생당을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전 의원은 비례 2번을 받았는데 현재 국민의당 지지율을 감안할 때 당선권에 해당된다. 이례적으로 '비례 재선 의원'이 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비례로 연달아 재선에 성공한 의원은 17대 한나라당, 18대 친박연대 소속으로 연달아 금뱃지를 단 송영선 전 의원 이후 아직 없다. 범위를 좀 더 넓히면 박선숙 의원이 18대와 20대 때 당을 옮겨가며 비례로 재선에 성공했다. 김종인 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비례로만 5선을 달성한 '진기록'을 갖고 있다.
정의당 비례대표 4명은 모두 지역구에 출마했다. 인천 연수을 이정미 의원, 청주 상당 김종대 의원, 안양 동안을 추혜선 의원, 전남 목포 윤소하 의원이다.
최근 두 번의 총선을 봐도 비례대표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은 '바늘 구멍 통과하기' 만큼 어렵다.
19대 비례 의원 54명 중 20대에 생환한 의원은 5명에 불과하다. 모두 민주당 소속으로 한정애(서울 강서병)·진선미(서울 강동갑)·남인순(서울 송파병)·도종환(충북 청주 흥덕)·홍의락(대구 북을) 의원이다. 생환율이 9.3%에 불과하다.
18대를 살펴봐도 생환율은 10명 중 1명 꼴이다. 18대 비례 의원 중 19대 총선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 의원은 민주당 김상희(경기 부천병)·안규백(서울 동대문갑) 의원과 새누리당 나성린(부산 진갑)·김을동(서울 송파병) 의원 4명에 불과하다. 새누리당 서청원(경기 화성갑)·이정현(전남 순천·곡성) 의원은 각각 2013년, 2014년 재보궐선거 때 당선돼 19대 뱃지를 달았다. 두 의원을 포함해도 전체 54명 중 6명으로, 생환율은 11.1%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나 대통령에 의해 비례대표로 영입된 후 지역구 의원을 거쳐 장관이나 시·도지사로 가는 엘리트 코스가 있었지만 모두 옛날 얘기"라며 "요즘 비례 의원을 보면 특정 분야 전문가인 만큼 입법, 정책, 국정감사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데 그런 면에 잘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비례 의원은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한 채, 재선에만 관심을 갖고 지역구 활동에 전념해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인용된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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