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새판짜기'가 심상치 않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단식 투쟁을 통해 결집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도 잠시, 직후 단행된 지도부 교체와 원내대표 임기 연장 불가가 당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당내 소장파와 수도권·충청권 의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터져나올 분위기다.
황 대표는 4일 청와대 사랑채 앞 투쟁천막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전날 결정한 나경원 원내대표 임기 연장 불가에 대해 공개발언을 하지 않았다. 나 원내대표는 당연직으로 회의에 참석해왔지만, 이날은 개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전날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인한 감정의 골이 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날 회의 시작 직전에는 4선 중진인 정진석 의원이 텐트 안에서 "정치 혼자하느냐. 정치 몇십년씩하는 사람들은 뭐냐"며 "정치 20년 한 사람인데, 이런 것은 처음 본다. 당신들 너무한다"고 고함 치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는 원내대표 임기 연장 여부를 최고위에서 결정한 것에 대한 항의로 보인다.
최고위 결정에 대해선 김세연 전 여의도연구원장도 "원내대표 경선 공고를 당 대표가 한다는 규정을 가지고 권한을 과대해석해서 나온 문제로 보인다"라며 "당 지배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규정은 물러나는 원내대표는 당사자일 수 있으니 또 다른 대표성을 가진 당직자가 후임 원내대표 선출 과정을 관리하라는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당 운영이 되는 것은 정말 곤란하다. 당이 정말 말기 증세를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당직 개편을 두고 친황(친황교안) 체제가 됐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라는 진행자의 지적에는 "그 점에서 상당히 우려할만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지난 2일의 당직자 35명의 일괄 사퇴로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원장직을 내려놓게 됐는데, 이후 일괄 사퇴 의사를 표시한 당직자 중 상당수가 유임됐다. 이에 따라 당 쇄신을 강하게 주장했던 김 의원을 내치기 위한 사퇴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모든 임명직 당직자가 사퇴하는데 진정성까지 의심하고 싶지 않았었다"며 "세상 살면서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하는 것"이라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한편 황 대표는 이날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신경쓰는 듯 "우리가 비우고 함께 뭉쳐야 새로운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비움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며 "국민의 명령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더 치열하게 좌파 정권의 장기 집권 음모에 맞서 싸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와 한국당부터 가장 깊이, 가장 철저하게 혁신하지 않으면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혁신이 멈추는 순간 당의 운명도 멈춘다는 위기감으로 뼈를 깎는 혁신에 임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국민 추천을 통해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위원장을 뽑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날 당 홈페이지에 공관위원장 추천 방법을 게시할 방침이다. 그는 "앞으로 공천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공관위원장 적임자를 추천해주기 바란다. 국민 뜻에 합당한 공관위원장을 세우고 공관위가 구성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천도 국민 중심으로 가겠다"며 "이미 혁신의 물길이 일기 시작했다.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인사가 '친황 체제 구축'이라는 지적에 대해 "나는 '친황' 하려고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인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라. 네이밍해놓고 틀에 맞추지 말고 사실관계를 보면 친황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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