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해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도 연장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수출통제를 하면서 "한국을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고 한데 배신감을 표시하면서 "그렇게 한국을 안보상 신뢰 못한다면서 군사정보를 공유하자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지소미아 종료 사태를 피할 수 있다면 일본과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거나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과 최대한 안보협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을 종합하면 지소미아 종료를 굳이 원하는건 아니지만 일본의 모순된 주장을 응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소미아를 종료한다는 식이다.
2016년 체결한 지소미아는 오는 23일 0시를 기해 효력이 잃는다. 이때 우리가 잃게될 안보 손실을 분명하고 뚜렷하다.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이달 3일부터 9일까지 일본내 미군기지와 주일미국대사관, 일본 외무성과 방위성 등을 둘러보고 왔다. 그 자리에서 미국과 일본의 군사·외교 전문가들도 두루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소미아가 한·미·일 안보협력에 긴요하다"고 강조했고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이득을 보는 나라는 북한, 중국, 러시아 뿐"이라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생각도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어느 야당의원이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북한과 중국이 안보 이익을 본다는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자 강 장관은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제 궁금한 것은 지소미아를 종료했을 때 우리가 얻는 국가 이익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의문이다. 강경화 장관도 '지소미아를 종료했을 때 우리가 얻는 국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한일 간의 갈등 상황에서 나온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말머리를 돌리다가 "어떤 부당한 보복 조치를 갑자기 당했을 때 원칙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도 국익의 일부분"이라고 얼버무렸다. 어쩐지 궁색한 답변이다. 문 대통령도 19일 지소미아를 종료하는 명분은 강조했지만 그로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국익이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8월22일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이 종료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그 때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려와 실망을 표시하면서 "종료 결정을 번복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핵심 동맹국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할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무능력한 안보당국자들이 자존심과 명분만 내세워 고집을 피우다가 국민들을 안보위험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다. 조선 인조는 청나라를 오랑캐라며 부르며 자존심과 명분을 내세우다가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을 초래했다. 그때 청나라 태종이 인조에게 보냈던 편지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들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니 억조중생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고 했던 질타다.
불꽃튀는 외교전쟁 터에서 자존심이나 명분을 내세워야할 때도 있다. 그러나 최종 판단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그리고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사항은 국익이다. 국익은 없는데 안보 손실만 초래하는 일이 눈앞에 놓여 있다. 그것을 자존심과 명분 탓에 강행하려 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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