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강력한 규제철폐를 외치는 후보는 보이지 않았다. 유력 대선 예비 후보들은 수도권 규제나 부동산 규제 등 쟁점사안에 대해서 대부분 '현상유지' 의견을 내놓아 꽉 막힌 성장 정체를 뚫을 수 있는 복안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고 있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개인과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규제개혁과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복지 확충이 이인삼각(二人三脚)처럼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조기 대선판에서 복지에만 치중하는 포퓰리즘 양상이 두드러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더불어민주당 후보 3명은 물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이 반대의사를 밝혔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이인제 전 의원만이 명시적으로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고 했고,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유보 입장을 나타냈다.
문 전 대표는 "지역 발전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해법은 국가균형발전정책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마치 제로섬 다툼처럼 갈등하는 양상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정책 중단에서 비롯됐다”며 “국가균형발전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면, 수도권 규제를 둘러싼 갈등은 훨씬 완화되고 각 지역이 서로 윈윈하는 상생 관계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정권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이 보수정권 들어와 중단된 점을 비판하면서, 사실상 수도권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셈이다.
바른정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은 "수도권 규제를 풀게 되면 블랙홀처럼 기업활동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서도 "하지만 수도권 규제를 유지한다고 해서 국토균형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문 전 대표를 견제했다.
국민의당 안 전 대표는 "수도권은 지역 도시와 경쟁할 것이 아니라, 세계 유수 도시와 경쟁해야 한다"며 "지나친 과밀화는 오히려 수도권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수도권 주민의 경제적 부담과 삶의 질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지자체장인 이재명 시장은 "낙후된 수도권 지역을 위한 특성화 개발정책은 필요하다"면서도 "기존의 수도권 규제완화를 통한 개발이 아니라 유수한 세계 도시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 안 지사는 "정치·행정수도 완성이 이루어지고 국가균형발전이 본 궤도에 오르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발전에 필요하다면, 불합리한 수도권 규제는 순차적으로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문 전 대표는 특별한 논거 없이 국가균형발전의 일관된 추진을 강조하면서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며 "상당수 대선후보들이 명확한 논거 없이 수도권 규제완화에 반대하고 있는데 한국경제에 어떤 득실이 있는지 제로베이스에서 고민해볼 시점이다"라고 평가했다.
김도형 한림대 교수는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과거 우리와 같은 대립을 경험했지만 공장입지법 등 각종 수도권규제 입법을 완화·철폐한지 오래다"라며 "이제는 행정의 광역화를 통해 중복시설을 감축·공유하고 중핵도시간 경쟁으로 도시경쟁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남아파트 재건축 35층 제한에 대해서 대선후보들 대부분은 "지자체의 몫"이라는 이유로 현상유지나 유보 입장을 나타냈다. 안희정 지사와 안철수 전 대표, 유승민 의원과 심상정 대표 등은 명시적으로 35층 제한을 찬성했다.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지사와 이인제 전 최고위원 뿐이었다. 서울 한강변의 스카이라인이 똑같은 높이의 성냥갑처럼 단조롭고 개성이 없다는 캐캐묵은 비판이 다음 정권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선재단 정책평가단은 "조망권이라는 준공공재를 향유하는 만큼 경관관리 등에 필요한 부담이 필수적이라고 본다면 주거지역의 35층 고도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주변의 공공시설 건설을 위한 응분의 기부채납과 건설 후 초과이익환수제도 등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프랑스의 CNDP (Commission National du Debat Public)나 미국의 NIF(National Issue Forum)같은 사전분쟁조정기구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가계부채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등 부동산 대출총량규제는 현재 수준이 유지되거나 다소 강화될 전망이다. 현재 수준보다 완화하겠다는 대선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문 전 대표는 "LTV, DTI 완화를 통한 '빚내서 집사라' 정책은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경기 과열 등을 유발해 우리나라 경제 체질을 악화시켜 왔다”며 “주택담보대출은 상환능력을 고려해 대출이 이루어지도록 규제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규제를 강화하지 않더라도 신규대출은 억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유지'의견을 냈다.
유승민 후보도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LTV, DTI를 규제할 필요가 있으나 지나친 규제로 집값이 하락하고 경제가 위축되어서는 안된다"며 현상유지를 택했다.
LTV와 DTI는 2014년 8월 각각 70%와 60%로 완화됐다. 그동안 정부는 LTV와 DTI라는 두 개 기준으로 대출규제를 강화해왔고, 올해부터 DSR(Debt Service Ratio: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라는 더욱 강력한 규제카드를 뽑아 들었다. 미국 금리인상 기조에 따라 시중은행 금리가 서서히 올라가고 자영업자 등의 소득이 부채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보여 가계부채 심각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기획취재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