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가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의 인적 청산 요구를 전격 수용해 친박 핵심인사 중 '1호 탈당'을 결행했다. 지난 달 대표직에서 내려온 뒤 지역에 칩거해온 이 전 대표는 2일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직전 당 대표로서 모든 책임을 안고 탈당한다"며 "당의 화평을 기원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아침 정우택 원내대표에게도 문자로 탈당을 알렸다. 그는 정 원대대표에게 "눈물을 머금고 탈당한다"며 "후임 당대표에게 백척간두 상태로 당을 물려주는 것도 죄스러운데 제가 걸림돌이 된다면 도리가 아니다. 저를 디딤돌 삼아 당이 화합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을 친박 인적청산의 처음이자 끝으로 삼아달라는 부탁으로 풀이된다. 그는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과 정무수석을 지낸 친박계로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호남 출신 첫 선출직 대표에 올랐다. 다만 박 대통령과는 가깝지만 '주류 친박'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것이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위치였다.
그는 탄핵 정국 속에서 사퇴 요구에 부딪혔고 지난 달 16일 친박계 정 원내대표가 당선되자 넉달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박계는 집단 탈당했고, 정 원내대표가 삼고초려한 인 비대위원장은 인적청산을 주장하고 나왔다. 앞서 인 비대위원장은 오는 6일까지 친박 핵심들이 자발적 결단을 하라고 요구했다. 친박들이 이를 거부하면 8일에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다며 배수진을 친 상태였다.
이에 대해 지난 1일 친박 핵심들은 별도 회합에서 인 위원장 요구를 거부하기로 결정하면서 새누리당은 또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분위기였다.
결국 이 전 대표는 비박계와의 '1차 내전'에 이어 인 비대위원장과 친박 핵심간 '2차 내전'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희생양을 자처한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살신성인이고 국민에 책임을 지려는 지도자의 모습"이라며 "이제 개혁보수신당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정 원내대표도 "이 전 대표의 탈당은 일부 언론에 의한 정치살인"이라며 "고통을 못 이기고 탈당을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박 중진은 "이 전 대표는 수십년간 새누리당을 위해 온몸을 던져 헌신해온 분"이라며 "올바른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탈당으로 당내 인적청산 논란이 종결될지는 미지수다. 당내에는 인 위원장이 서청원 최경환 두 의원의 탈당을 인적청산의 필요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인 위원장은 대상포진에 걸려 이날까지 당사에 나오지 않았다.
친박계 역시 '연쇄 탈당'은 가당치 않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는 분위기다. 최경환 의원은 이날 대구시·경북도당 신년교례회에서 "마지막 1인이 남을 때까지 새누리당을 지킬 것"이라며 "국민들이 이제 그만 됐다고 할때까지 반성하겠다"고 탈당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친박 핵심들은)인명진 비대위원장이 하는 방법이 정도에 어긋난다, 정당에서 마치 인민재판하는 식으로 사람들을 집어서 어떻게 해라 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친박계 일각에선 인 위원장이 사실상 친박계를 해체시켜 '반기문 당'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심지어 야당에 정권을 내주기 위해 새누리당에 들어온 '간자(間者)'라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흘러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친박 재선 의원은 "충청권 출신인 인 위원장이 반기문 영입을 위해 준비작업을 한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친박 중진 역시 "반기문 전 총장이 새누리당으로 올 가능성은 낮다. 결국 당 수습이 아닌 당 분열만 가속화시키는 패착"이라며 "지금이라도 당내 인사들을 화합시키고 갈등을 봉합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헌철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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