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년간 우리 정치권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계파로 위세를 떨쳐온 새누리당의 친박(친박근혜)계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지난 2005년 제1야당의 주류로 시작해 이명박 정부 시절 '여당 내 야당'을 거쳐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키고 여권의 명실상부한 주류가 된 지 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박근혜'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계파 보스와 '영남'이라는 탄탄한 지역 기반의 양대 요소를 완벽하게 겸비한 친박계도 평범한 중년여성의 국정 개입 의혹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청와대의 친박 핵심 참모들이 모두 퇴진한 가운데 여당 내의 친박 핵심 인사들도 현 정부 들어 최대의 정치적 고비를 맞았습니다.
친박계의 좌장격인 최경환 의원은 수면 아래에서 잠행을 이어가고 있고,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친박연대'란 정당을 창당한 이래 친박의 맏형으로 불려온 서청원 의원 역시 입을 닫고 있습니다.
이정현 대표를 위시한 친박 지도부는 이미 당내 적지 않은 의원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공식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특히 친박 지도부 사퇴를 요구한 의원 중에는 친박계 또는 범친박계로 분류돼온 이학재·유의동·김순례·김종석·김현아·송석준·송희경·정유섭 의원 등까지 포함돼 이른바 탈박(脫친박) 현상이 가속되고 있습니다.
한 당직자는 1일 "20대 총선 공천에서 비박계를 학살하고 비례대표와 초선에 '묻지마 친박 공천'을 하는 바람에 초선과 비례대표는 대부분 친박으로 채워졌다"면서 "그러나 초선과 비례대표는 로열티(충성도)가 떨어지므로 며칠 내에 '난파선에서의 엑소더스(대탈출)'가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정치 신인을 중심으로 '친박 상표'를 거부하는 경향이 확산하면서 당내 친박계는 이정현 대표와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일부 핵심 인사 몇 명으로 세가 급격히 축소돼 사실상 소멸 단계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에 몸담은 적이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누리당이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강성 친박(친박근혜) 인사들만 남은 채 쪼개질 수 있다고도 내다봤습니다.
이런 친박계의 세 위축은 지난 2007년 친노(친노무현)계가 위기에 몰리면서 '폐족'으로 불렸던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당시엔 야당인 한나라당과 여당 내 비노(비노무현)계가 친노를 '폐족'으로 불렀고 친노계 일각에서도 "우리는 폐족"이라는 자조가 새어 나왔던 게 사실입니다.
31일 비박계 의원들의 회동 자리에서도 친박을 향해 '친박 폐족'이라고 해야 한다는 언급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친노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측근들의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사멸 위기에 몰렸다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재기에 성공, 현재는 제1야당의 주류로 부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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