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일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 대회의장.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잠시 짬을 내 박근혜 대통령 자리로 찾아와 귓속말을 했다.
당시 이 사진이 사진기자들에게 포착돼 언론에 공개됐고 만남은 단 2~3분만에 끝났다. 당시 반 총장이 박 대통령에게 귓속말로 전했던 말은 일종의 ‘면담 요청’이었다고 한다.
이 후 두 사람은 별도 장소에서 20분간 만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불필요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회동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당시 만남에서 대북 제재와 관련한 국제공조 분위기와 향후 전망 등에 대해 주로 얘기를 나눴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엔이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도출해 낸 것을 두고, 박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애 많이 쓰셨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반 총장은 박 대통령에게 5월 한국 방문 계획에 대해서도 짧막히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대통령과 차기 유력대권 주자간 회동이었던 만큼, 이 만남이 향후 대권구도와 관련해 미묘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반 총장에 대해 박 대통령은 표면적으로 특별한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때 반 총장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그건 국민에게 물어보시라”며 즉답을 피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박 대통령은 반 총장에 대해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일부 참모들 전언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반 총장 능력과 활동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고 계시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한국의 외교력이 중요한 때인 만큼, 우리 대통령이 유엔을 이끌고 있는 반 총장을 만나는건 대한민국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매우 당연한 것 아니냐”며 “이를 향후 대권구도 등 정치적으로만 봐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5월 한국 방문을 통해 반 총장이 사실상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 한 만큼, 내년 대선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특히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친분이 두터웠던 일부 참모들이 4·13 총선 이후 청와대를 떠난 상황이라 반 총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 한 참모는 “반 총장 의중이 어떤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인 분인 만큼, 한국을 이끌 지도자로도 손색이 없는 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를 노동·교육 등 4대 구조개혁과 산업 구조조정 등에 주력하느라 차기 대권구도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며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은 그야말로 억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남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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