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을 깎아주진 않으니 양이라도 많은 걸 사야죠."
서울 서초구에서 자취 중인 20대 대학원생 A씨.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수입이 넉넉하지 않다는 그는 주로 편의점에서 생필품을 구매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형마트에서는 생필품을 조금만 사도 5만원, 10만원씩 결제하게 돼 최대한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A씨는 "온라인에서 최저가 상품을 구매하기도 하지만, 편의점에서는 대용량 상품이나 행사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 좋다"며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과 편의점 행사, 가격 정보를 공유하는 채팅방도 따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편의점서 대용량 제품·행사 상품 매출 급증
한 소비자가 편의점 이마트24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모습. [사진 제공 = 이마트24]
고물가 현상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가성비 좋은 상품에 주목하고 있다. 같은 가격이라면 더 양이 많거나, 사은품을 제공하는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체감하는 부담이라도 덜어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7일 이마트24에 따르면 지난 7~9월 이마트24의 대용량 생필품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4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유통기한 부담이 적고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는 생필품들의 매출이 뚜렷하게 늘어났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대용량 휴지 59% ▲세제 47% ▲비누 40% ▲치약 35% 순으로 매출이 증가했다. 위생·가사용품 외에 ▲대용량 스틱커피 29% ▲과자 23% 등 먹거리 매출도 전년보다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이 기간 음료 품목에서는 '원플러스원(1+1)', '투플러스원(2+1)' 행사가 이뤄진 상품의 매출이 7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24는 고물가에 따른 소비 패턴이 가성비를 앞세운 생필품과 행사 상품 구매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 "대량 구매로 단가 조정"…사업전략도 바뀌나
오비맥주가 출시해 판매 중인 맥주 카스 캔제품과 대용량 제품 모습. [사진 제공 = 오비맥주]
업계에서는 이 같은 소비 흐름을 읽고 저마다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전국 단위 최저가 상품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온라인 시장에 견줄 만큼 대용량 상품, 가성비 상품으로 소비자의 이목을 끌려는 것이다.주류업계에서는 오비맥주가 지난 여름 버드와이저 740㎖ 대용량 상품으로 품절 대란을 일으켜 화제가 됐다. 편의점에서 500㎖ 상품 기준 '4캔 1만원'으로 통용되던 맥주 가격이 인상되자 소비자들이 대용량 상품인 버드와이저를 대거 구매한 것.
이에 오비맥주는 가정시장을 겨냥해 최근 2ℓ 용량의 '카스 2.0 메가페트'를 출시, 판매에 나섰다. 하이트진로 역시 1.9ℓ 용량의 '테라 페트'를 출시해 전국 슈퍼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대형마트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사업전략을 일부 수정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다만 취급하는 상품의 수가 적지 않은 만큼 단기간에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마트가 트레이더스를 전면 개편해 '창고형 할인점'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며 "대용량으로 구매해 제품당 단가를 낮추고, 또 이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갖추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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