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불매운동 벌써 1년 ⑤ ◆
일본의 주요 관광 도시인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오키나와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해외 여행지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대표적인 해외 단거리 노선인데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것이 장점으로 꼽혔다. 일본 여행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일본 소도시 여행도 최근 몇년 간 인기를 끌었다. 이에 맞춰 에어서울 등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속속 일본 소도시로 진출해 노선을 확장하면서 국내 LCC의 일본 노선 비중은 최대 67%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한일 갈등에 따른 일본 불매운동 일환으로 '일본 여행 보이콧'이 확산됐고, 좌석이 텅텅 빈 항공기를 끌고 일본으로 향해야 했던 국내 LCC들은 결국 일본 노선을 대폭 축소했다.
3일 항공 업계에 따르면 일본 여행 보이콧이 한창이던 지난해 8월, 한일 하늘길은 60% 이상 닫혔다. 일본을 오가는 항공편 10편 중 6편은 운항을 중단하거나 편수를 줄인 셈이다. 특히 일본 소도시 노선은 아예 사라지면서 지역 경제와 일본 정치권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 약 3조3000억원의 한국인 관광 소비액이 감소할 것이란 일본 내 분석도 나왔다.
오키나와에서는 미스 오키나와까지 공항에 나와 오키나와로 온 한국인 관광객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환영 행사를 열 정도였다. 한국인 관광객 환영 현수막도 곳곳에 붙었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된 일본 여행 보이콧 이미지 [사진 : 인스타그램]
지난해 8월에는 일본 항공사인 피치항공 등도 한국행 노선을 중단하거나 줄였다. 피치항공은 일본 최대 항공사인 ANA의 자회사로 일본 LCC 중 두 번째로 큰 항공사다. 당시 피치항공은 한국경제 악화와 원화 약세 등을 노선 감축 이유로 들었지만, 일본 여행 보이콧 영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항공업계 관계자는 "한일관계 경색 후 일본 방문 한국인 수는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 수는 10%대 감소에 그쳤던 것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의 결정"이라면서 "한일 노선의 80% 이상을 한국 항공사가 운영해 피해 역시 국내 항공사가 더 컸다"고 설명했다.
일본 노선을 축소한 국내 LCC들은 곧장 실적 악화에 빠졌다. 지난해 모든 국내 LCC가 수백억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국내 항공사는 고사 상태에 빠졌다. 올해 1분기 이익을 낸 국내 항공사는 단 한 곳도 없다. 모두 마이너스 경영을 한 셈이다. 전 항공사가 희망휴직이나 순환휴직, 무급휴직 등 휴직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항공사가 노선을 아예 운영하지 않는 '셧다운' 사태도 발생했다. 이스타항공은 5개월째 임직원 월급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 매경DB]
지난해 일본 여행 보이콧 확산으로 국내 항공사들은 다급히 중화권과 동남아로 노선 확대에 나섰지만, 일본 노선과 비교해 비행시간이 길어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 추가적인 운수권 획득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 대체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해 12월부터 조금씩 일본 노선의 한국인 탑승객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코로나19 사태가 몰아치면서 양국의 인바운드 수요는 99% 감소했다.게다가 지난 3월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이 경제교류 및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합의한 입국비자(사증) 효력을 정지했다. 이에 따라 현재 재외국민과 영주권자, 공무상 입출국자 등 제한된 승객만이 일본 노선을 이용하고 있다.
한일 상황 만큼이나 국내 항공사들의 인수합병(M&A) 역시 좌초 위기에 빠졌다. 실적 악화 등으로 시장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 모두 합병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줄도산 위기에 처한 국내 항공사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전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아쉬운 수준이다. 항공사 자산 대비 정부 지원 비율은 7.1%로, 대한항공(1조2000억원)과 아시아나항공(1조7000억원)에 총 2조9000억원을, LCC에 3000억원을 각각 지원했다. 독일이 기간산업지원 프로그램으로 루프트한자에만 90억유로(약 12조원)를 지원해 회사 자산 대비 21%를 투입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프랑스 역시 국적기인 에어프랑스에 70억유로(약 9조5000억원)를 쏟아 부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본 여행 보이콧은 국내 항공사들의 줄도산 위기의 발화점 같은 역할을 했다. 홍콩 시위와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며 국내 항공업계는 숨통이 끊어질 상황"이라면서 "국내 항공사들이 어려움을 겪은지 일년이 넘은 만큼 다시 날개를 펴는 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윤경 기자 bykj@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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