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한풀 꺾였단 소리도 있지만 관련업계는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다. BTS를 비롯한 한국 가수들은 공연은 물론 입국조차 어려우며 게임콘텐츠도 빗장이 걸려있는 상태다. 지난달 미국 로체스터대 오케스트라단의 방문 공연때 중국정부가 한국인 단원의 입국을 거부한 일은 한한령의 현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 같이 매서운 한한령을 소리 소문없이 뚫은 우리의 문화콘텐츠가 있다. 바로 체험형 예술감상을 구현한 신개념 문화예술 공간 '라뜰리에'(L'atelier)다. 라뜰리에는 기존의 회화 감상에 IT기술을 접목해 단순히 눈으로 보기만 하는 전시가 아닌 청각, 후각 등 오감을 통해 작품을 입체적으로 즐기게 한다. 국내에서 지난 2017년 11월 첫 선을 보인 이래 누적 유료입장객만 35만여명(2019년 10월 현재)을 끌어모았다.
맥키스컴퍼니의 '라뜰리에'가 지난 8일 첫 해외진출 지역이자 중국 문화의 중심지 베이징 왕푸징 거리에 문을 열었다. 300평 넘는 규모의 베이징 라뜰리에는 '신들의 미술관'과 '쁘띠 라뜰리에' 등 2개관으로 구성됐으며, 동대문 전시관 처럼 '유리즌의 신전'을 모티브로 한 입구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테르트르 광장', '모네의 정원','고흐의 방' 등 호평을 받았던 여섯개의 공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베이징 전시관에서 처음 선보인 '쁘띠 라뜰리에'. 명화를 새롭게 재해석해 그림 속19세기 프랑스 도시를 재현했다.
개관 첫날부터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데, 현지에선 주로 '특이하다' '재미있다'라는 반응이 많다. 맥키스컴퍼니측에 따르면, 관람을 마치고 나온 한 중국인 관람객은 "호불호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매우 좋았다. 19세기 파리로 시공간 여행을 떠난 느낌이었다. 그림속으로 직접 들어가 주인공이 된 것같았다"고 한다.한한령이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도 라뜰리에가 중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차별화된 콘텐츠가 중국인들의 맘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평면적 그림 감상이 아닌 3차원 공간에서 청각과 후각 등 오감을 통해 명화를 체험하는 것은 예전엔 없던 예술 감상법이다. 게다가, 이번 베이징 전시관은 '테르트르 광장', '모네의 정원','고흐의 방'등 서울 동대문 전시관과 같은 명칭의 공간을 마련했지만 세부 내용은 다르다. 전시 담당자는 "각 공간의 풍경과 소품등 디테일적인 면을 중국인들이 좋아할만한 맞춤형으로 구성했다. 특히 '쁘띠 라뜰리에' 관에서는 미디어 뮤지컬 및 홀로그램 토크쇼 '에밀졸라의 서재' 등 명화를 재해석한 콘텐츠를 베이징에서 처음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특성상 중국정부가 경계하는 한국적 냄새가 적은 것도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베이징 전시관 관계자는"아무래도 유럽 미술작품이 주요 테마다 보니 한국 색채는 옅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오히려 그 덕에 한한령을 비켜가고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개관한지 일주일 가량밖에 안돼 전시 시스템이 100% 완전하진 않다. 그래도 관람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향후 4개월간 유료관람객 20만명을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라뜰리에는 베이징에 이어 내년 봄 상하이와 충칭에도 전시관을 마련, 중국 5대 도시 투어로 대륙 공략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 파트너사와도 협약을 추진하고 있어 내후년엔 일본 열도에도 진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한령으로 얼어붙어 있는 중국시장을 '체험형 예술' 이라는 신박한 콘셉트로 녹이고 있는 라뜰리에.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에서 라뜰리에가 관람객들의 마음을 얼마나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8일 베이징 문화 중심가 왕푸징(王府井)에 자리한 명품쇼핑몰 '王府中環(WF Central)' 에 개관해 4개월간 중국 관람객들과의 만남을 알리는 라뜰리에 포스터.
[신윤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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