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컨베이어 벨트가 없네"
지난 11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 자리잡은 만 트럭(MAN Truck) 공장을 견학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라진 컨베이어 벨트다.
컨베이어 벨트는 첨단 산업이지만 노동 집약적인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다. 컨베이어 벨트는 자동차 대량 생산(포디즘)의 주역이기도 하다. 미국 자동차 회사인 포드가 1908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통해 '모델 T'를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자동차 대량생산에 필수적인 아이템이 됐다.
그러나 만 뮌헨 차축(액슬) 생산 공장에는 생산 라인을 따라 길게 이어진 컨베이어 벨트 대신 무인운송로봇(AGV) 수십 대가 일렬로 움직인다. 작업자들은 작업공간에 AGV가 멈추면 정해진 부품을 조립한다. 한 라인에서 작업이 끝나면 AGV 스스로 움직여 다른 생산라인으로 이동한다.
부품 조립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당 부품을 운반하는 AGV만 라인에서 벗어나 정해진 리워크(Rework) 장소로 이동한다.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라인으로 복귀한다. 자동화 공장에서 부품을 나르는 역할을 주로 맡았던 AGV가 생산 라인에 투입된 셈이다. AGV는 트럭 조립 공장에서도 사용된다.
뮌헨 차축 공장에서는 작업자 800여명이 앞 차축, 뒤 차축, 드라이브 샤프트, 트랜스퍼 케이스를 만든다. 하루 차축 생산량은 500여개다.
AGV는 소품종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컨베이어 벨트보다 다품종 소량생산에 알맞은 생산 시스템으로 여겨진다.
한 개의 생산 라인에서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혼류 생산을 할 때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보다 AGV 한 대 한 대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 더 효율적이다.
또 생산 라인 위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작업 과정 중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작업에도 영향을 주고, 무거운 부품 덩어리를 사람의 힘만으로 라인에서 빼내기도 어려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과 달리 문제 해결 과정이 빠르고 간단하다.
문제 부품을 적재하거나 문제가 생긴 AGV만 빼내면 되기 때문에 품질 관리에 유리해서다. 동선이 클 수밖에 없는 컨베이어 벨트보다 공간도 적게 차지한다.
뮌헨 공장장인 마티아스 마인들 박사는 "트럭은 승용차와 달리 차축이 다양하고 소량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컨베이어 벨트보다 생산 유연성이 뛰어난 AGV를 선택했다"며 "AGV 시스템을 통해 한 라인에서 70여종의 차축과 섀시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 뮌헨공장은 사용할 부품을 수요에 따라 조달받아 재고를 쌓아두지 않는 JIT(Just-in time) 시스템도 도입했다. 부품은 따로 적재공간에 두지 않고 만 소유 트레일러에 보관한 뒤 생산 라인에 투입한다. 보관 시간은 3~8시간 정도다. 이를 통해 만은 부품 보관비용을 70% 가량 절감한 것은 물론 부품 이동에 필요한 시간도 절약했다고 설명한다.
혼류 생산과 JIT는 자동차 생산 시스템에 혁신을 일으킨 '토요타 생산 시스템(TPS, Toyota Productivity System)'의 핵심으로 '토요타 방식(Toyota Way)'이라고도 부른다.
만은 이와 함께 생산 업무의 효율성 향상, 작업 배분 최적화, 품질 향상 등을 위해 워크숍을 수시로 연다. 작업자들은 공장 내부 곳곳에 마련된 교육 공간에서 비치된 부품과 도구를 이용해 숙련도도 높인다. '워킹 트레이닝 문화(Working Training Culture)'다.
각 작업부문별 팀장은 이 공간에서 작업자에게 업무를 배분하는 동시에 기술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최근에도 열처리 공정에서 온도를 높이면 공정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현장 작업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효과를 봤다.
만은 이를 '카이젠(kaizen)'이라 부른다. 토요타에서 유래해 독일 공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개선(改善)이라는 한자의 일본식 표현이다. 카이젠은 명령에 따라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자 스스로가 지혜를 내 개선을 이끌어내는 게 특징이다.
만은 토요타 방식을 더 '개선'한 AGV 혼류 생산·부품 관리·워킹 트레이닝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만 방식(MAN Way)'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는 셈이다.
[뮌헨 = 디지털뉴스국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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