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경영 은퇴를 선언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84)은 국내 최연소 선장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유일한 실습항해사였던 김 회장은 26세가 되던 해 우리나라 최연소 선장 타이틀을 달았다. 그의 이름은 세계 수산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됐다. 김 회장이 30대 중반에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국내 대표 생활기업 '동원그룹'과 증권기업 '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성장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김 회장은 '재계의 신사'로 불린다. 창업 후 50년의 세월 동안 성실하고 치열하게 기업경영에만 몰두했고 정도경영의 길만을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철학은 '성실한 기업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이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기업인이라면 흑자경영을 통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고용창출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기업인의 성실과 책임을 강조한다.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던 해에는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일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했던 일화도 있다. 또공채제도를 도입한 1984년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김 회장은 1991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 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 납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로는 김재철의 62억 원이 사상 처음'이라고 언론에 밝히며 주요신문들에서 크게 보도된 바 있다.
김 회장의 정도경영과 원칙은 자녀교육에도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은 두 아들이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1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A4 4~5장 분량의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통찰력이 생기고, 잘못된 정보에 속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어릴적부터 경영수업을 시킨 것이다.
1969년 8월 동원의 최초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어식에 참석한 김재철 회장. [사진 제공 = 동원그룹]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이 대학을 마치자, 북태평양 명태잡이 어선을 약 6개월 정도 태웠다. 또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은 입사 후 창원의 참치캔 제조공장에서 생산직과 청량리지역 영업사원 등 가장 바쁜 현장부터 경험시켰다. 두 아들 모두 현장을 두루 경험한 후 11년이 넘어 임원으로 승진했다. 경영자가 현장을 모르면 안되며, 경험을 해봐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과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원칙 때문이었다.김 회장이 성실한 기업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납세와 고용창출 그리고 '인재육성'이었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양어선 선장이던 시절부터 고향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김 회장은, 창업 10년인 1979년에 자신의 지분 10%를 출자해 장학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대기업조차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예가 드물던 시기였다.
동원육영재단은 40년 간 장학금과 연구비, 교육발전기금 등 약 420억 원에 가까운 장학금을 통해 우리나라 인재육성에 힘쓰고 있다. 또한어린이들에 그림책을 나눠주는 '동원 책꾸러기'와 대학생 대상 전인교육 프로그램인 '라이프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창립 50주년 기념식이자 퇴임식에서 "'인생의 짐은 무거울수록 좋다. 그럴수록 인간은 성장하니까'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노력해왔다"며 "동원의 자랑스러운 50년을 만들 수 있도록 바탕이 되어 준 우리나라와 사회에 감사를 드리며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한 기업이 될 것을 다짐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 회장의 뒤를 이어선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이 그룹을 이끈다. 김 부회장은 1996년 참치 공장 말단 영업사원부터 시작해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 등을 거쳐 2013년 부회장직에 올랐다.
[디지털뉴스국 신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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