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이 내뿜는 배출가스에 포함되는 황산화물(SOx) 함량을 더 줄이도록 하는 환경규제 강화가 예정대로 오는 2020년 시작될 가능성이 커져 해운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탈황설비 장착, 저유황유 사용, 액화천연가스(LNG)로의 추진 연료 전환 등의 대안 중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해서다.
유엔 산하의 국제해사기구(IMO)는 오는 2020년 1월 1일부터 선박 배기가스의 황산화물 함량 허용치를 기존 3.5%에서 0.5%로 낮추는 규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31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IMO가 최근 개최한 해양환경보호위원회 제73차 회의에서는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대해 미국·그리스 등이 주장한 경험축적기 도입 합의가 연기됐다.
경험축적기 도입을 주장한 측은 회의에서 규제가 시행된 뒤 실측데이터를 분석해 그 결과에 따라 필요시 협약을 개정하자는 취지라며 규제 강화를 연기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앞서 황산화물 배출 규제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해운업계에서는 경험축적기 도입을 규제 시행 연기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해양환경보호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한국선급 관계자는 이번 73차 회의에서 경험축적기를 도입이 무산됐고, 내년 5월 열리는 제74차 회의에서는 저유황유 사용이 선박에 미치는 영향을 실측하고 이를 분석할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선박 배출가스에 포함된 황산화물을 줄이는 방법은 ▲저유황유 사용 ▲탈황설비(스크러버) 장착 ▲LNG 추진선 건조 등 세 가지다. 그러나 해운업계는 아직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 규제 대응 방안인지를 찾지 못했다.
우선 저유황유를 사용하면 비용이 늘어난다. 현재 기존 선박유인 벙커C유와 저유황유 사이의 가격 차이는 t당 300~350달러지만, 강화된 규제가 시작되는 2020년부터는 저유황유 수요가 늘어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이에 정유업계는 벙커C유에서 황을 제거하는 설비에 대한 투자를 나섰다.
스크러버를 장착하면 기존 벙커C유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장비를 설치하는 동안 선박을 운항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배기가스에서 황을 걸러낸 슬러지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해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LNG 추진선 건조로 규제 대응 트렌드가 형성되면 조선업계가 가장 큰 수혜를 받게 된다. 선사들의 선박 교체 주기가 빨라질 수 있어서다. 그러나 LNG 추진선은 황산화물 배출 규제가 자리잡은 뒤 나올 규제로 꼽히는 메탄을 많이 내뿜는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선사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지출한 비용을 화주들로부터 보전받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특히 컨테이너 운송 시장은 선복(화물을 실을 수 있는 공간) 공급 과잉으로 수년째 운임 불황이 이어지는 중이다. 최근 유가 급등으로 유가할증료 도입이 시도되고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을 정도다.
그나마 전용선 계약이 많은 벌크선 업계는 상황이 낫다. 전용선 계약은 화물을 운송한 뒤 운송비를 정산하면서 비용 변동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에 대한해운은 IMO의 황산화물 배출 규제가 시행돼 저유황유를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매출과 수익이 늘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