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 달러 선물환 담합행위로 적발된 BNP파리바은행 전 영업담당 부장 J씨가 불려나왔다. 한차례 이 사건을 심의했던 공정위가 해당 은행은 물론 J씨 등 담합행위 가담 직원까지 처벌하기로 하면서 혐의를 소명하기 위해 출석한 것이다. 현재 다른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J씨는 "형사처벌을 받으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며 선처를 읍소했다.
J씨의 읍소가 통한 것일까. 공정위는 최근 이 사건의 법인과 담당직원 모두 고발하지 않고 과징금 1억7600만원만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공정위가 갑작스레 고발을 포기한 배경을 두고 석연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사건에서 BNP파리바은행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도이치은행은 법무법인 세종을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새정부에서 전속고발권 폐지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공정위의 고발권 독점 폐해가 실현됐다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는 앞서 3월 8일 이들 외국계은행의 담합행위 건으로 전원회의를 열었지만 처벌 내용을 결정하지 못하고 이례적으로 재심사명령을 내렸다. 1심 기능을 하는 공정위 심결에서 검사 역할인 카르텔조사국에서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두 외국계은행의 프랑스·독일 본점을 검찰에 고발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위원회에서 추가로 담합행위에 가담한 직원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재심사를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르텔조사국은 이러한 전원회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달 19일 재심에서 이들 2개 외국계 은행에 대한 과징금 부과와 함께 법인·담당직원을 모두 검찰에 고발한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올렸다.
피심의인측 관계자에 따르면 "담합을 주도한 부장급 직원 2명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이례적으로 재심사명령이 내려졌다"며 "예상과 달리 재심일정이 빠르게 잡혀 의아했는데 결론에서 법인·직원 모두 고발하지 않는 것으로 뒤집혔다"고 말했다. 불과 한달정도의 기간 사이에 공정위 내부의 기류가 바뀐 것이다.
BNP파리바은행·도이치은행 서울지점은 2011~2014년 한 기업의 정기적인 달러화 선물환 구매 입찰에서 서로 번갈아가면서 낙찰받기로 사전에 약속하고 달러당 최소 2원 이상을 마진으로 붙이기로 유선전화와 메신저 등을 통해 합의했다. 이들은 44회에 걸쳐 총 2억2400달러의 선물환 입찰 계약을 나눠먹었다. 기존 마진이 달러당 평균 0.9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달러당 최소 1.1원을 담합으로 얻은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담합 금액이 크지않고 이들 글로벌은행의 전체 매출에 비해 관련매출의 비중도 낮아 재심에서 고발은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달새 이들에 대한 처분 방침이 급격하게 변화한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배영수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재심사명령이 내려진 배경과 관련해 "심사의견서 관련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고, 재심사명령이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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