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난처하군"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TV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神) 도깨비'에서 공유가 타고 나와 유명해진 마세라티 르반떼를 어렵사리 빌렸는데, 폭설로 길이 엉망이었다. 차량 반납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남짓. 스노타이어를 장착하지 않았지만 겨울에 강한 마세라티 4륜구동 시스템 'Q4'를 믿어보기로 했다.
르반떼는 이탈리안 하이퍼포먼스 럭셔리 브랜드인 마세라티가 100년이 넘는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내놓은 SUV다.
르반떼는 온화한 바람에서 순간 강풍으로 돌변하는 '지중해의 바람'이라는 뜻이다. 마세라티는 폭스바겐 브랜드 못지않게 바람을 차명에 넣는 브랜드다. 기블리는 사하라 사막의 열풍을 의미한다.
르반떼는 2가지 가솔린 모델과 1가지 디젤 모델 등 총 3가지 라인으로 나온다. 시승차는 최상위 모델인 르반떼S. 가격은 1억7410만원이다.
3.0 V6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과 ZF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최고출력은 430마력, 최대토크는 59.1kg.m, 발진가속도(시속 100㎞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는 5.2초, 최고 속도는 264km/h로 동급 최고 수준이다. 연비는 ℓ당 6.4km(도심 5.6km, 고속7.8km)다.
외모는 벨트라인 위만 본다면 영락없이 마세라티 고성능 스포츠카다. 매끄러우면서도 우아한 자태다. 질주하고 싶어 안달 난 듯하다.
앞모습은 도깨비(공유가 아니다) 문양처럼 매서운 얼굴이다. 날카롭게 디자인된 헤드램프, 맹수의 이빨처럼 보이는 음각 타입 세로바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에 마세라티의 상징인 포세이돈 삼지창은 도깨비의 영험한 칼처럼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기블리를 닮았지만 더 강한 이미지다. 뒷모습은 그란투리스모와 비슷하다. 리어램프는 그란투리스모처럼 역삼각형이지만 더 날렵해졌다.
실내는 타고 내리기 편하다. 키가 작은 사람이나 치마를 입은 여성도 쉽게 탈 수 있다. 스포츠모드로 달릴 때처럼 차고가 낮아지는 에어서스펜션이 주차 때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에어서스펜션은 지상고가 최대 8.5cm까지 조절된다.
실내 질감은 탁월하다. 이탈리아 남성 명품 패션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최고급 원단을 시트 중심, 천정, 도어 트림 등 곳곳에 사용했다. 마세라티에서만 볼 수 있는 제냐 마감이다. 빨간색과 검은색의 투톤 가죽은 이탈리아 명품 지갑이나 핸드백을 만지는 것처럼 촉감이 뛰어나다. TV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주인공 공유가 뇌리를 스치고 지났다.
기존보다 커진 8.4인치 모니터는 보기에도 시원하다. 내비게이션, 온도조절 등 차량 기능을 터치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다. 대시보드 중앙에는 명품 손목시계를 닮은 아날로그 시계가 자리잡아 시선을 모으는 동시에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대시보드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팔걸이 수납함은 보기보다 넉넉하다. 깊이가 깊어 작은 핸드백은 충분히 넣을 수 있다.
1280W 앰프와 17개 스피커로 구성된 바우어앤드윌킨스(B&W)는 르반떼를 '달리는 콘서트홀'로 변신시킨다.
시승에 나서기 전 도로 상태를 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도로는 일반 주행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제설작업이 이뤄졌다. 스티어링휠은 테두리에 홈이 파져 있다. 타이어로 감싸진 휠처럼 오목하다. 처음엔 낯선 질감에 움찔했지만 한두번 어루만지듯 휠을 잡고 돌리자 익숙해졌다. 홈 때문이지 손에 감기는 그립감은 만족스럽다.
시동을 걸자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배기움이 뒤쪽에서 앞쪽으로 흘러나온다. 기어노브 옆에 있는 주행모드 중 I.C.E를 선택했다. 눈길을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나가기 전에는 편안하게 달리고 싶어서다. 고급 휘발유 주유 비용도 아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I.C.E는 'Increased Control and Efficiency'의 약자다. 차량 반응을 노멀 모드보다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연료 소모와 소음을 줄여주는 기능이다. '아이스' 주행과는 상관없다. 르반떼 주행모드는 노멀, M(수동), I.C.E, 스포츠 4가지다.
도심에서는 승차감이 부드러웠다. 브레이크 성능도 막강했다. 세단 수준은 아니었지만 소음과 진동도 잘 억제했다. 그러나 "내가 이러려고 마세라티를 탔나"는 생각이 나게 만든다. 심쿵거리게 만드는 우렁찬 배기음을 귀와 심장으로 느끼며 달려야 마세라티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접어든 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꿨다. 차체가 착 가라앉는 움직임이 시트를 타고 전달됐다.
제설작업이 잘 이뤄진 직선도로에 접어든 뒤 가속페달을 밟자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2톤이 넘는 거구가 망설임 없이 박력있게 곧장 질주한다. 최대토크 59.1kg.m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었다. 발진가속도(시속 0→100km 도달시간)는 5.2초다. 기블리 3.0 가솔린 모델의 5.6초보다 빠르다. 이 정도면 르반떼는 'SUV 탈을 쓴 스포츠카'다.
제설작업을 했지만 곳곳이 빙판길이어서 풀 가속은 순간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국도로 접어든 뒤에는 노멀과 수동 모드를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
제설작업이 잘 이뤄지지 않은 곳에서는 밀리는 느낌이 나긴 했지만 4륜구동의 안정성 때문에 제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속도를 줄이거나 신호가 변경돼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차체가 쏠리지 않았다. 코너를 돌 때도 차체 흔들림을 잘 억제했다.
시승할 때 이날처럼 날이 좋지 않았던 적은 드물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르반떼의 주행성능과 안정성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다. "날이 좋지 않아서, 오히려 르반떼가 좋았다"
[디지털뉴스국 최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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