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 대한선주 부실 풍파도 견뎠는데.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다니···”
3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만난 한진해운 한 직원은 믿기 어렵다는 듯 말끝을 잇지 못했다. 이날 산업은행 등 채권단 추가 지원 거부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수순을 밟게된 한진해운은 39년 해운사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국내 1위 해운사 한진해운 법정관리 수순을 밟으며 국내 해운사는 ‘흑역사’로 점철됐다.
갖은 고초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섰지만 최고경영진 중장기 전략 부재와 업황 부진, 글로벌 운임 ‘치킨게임’등이 겹치며 몰락의 길에 들었다.
유럽 등 해외 해운사가 정부 지원을 받아 인수·합병(M&A) 등 몸집을 키워간 반면 한국은 정책 지원 사각지대에서 자력 갱생만 강요받은 영향도 컸다. 2001년에는 ‘빅3’ 해운업체였던 조양상선이 파산했고, 2013년에는 STX해운이 법정관리에 들며 국내 해운사에 암운이 드리웠다.
올해 창립 39주년을 맞은 한진해운은 국내 1위 국적선사로서 체면을 구긴체 법정관리행이 불가피해졌고 40년 된 현대상선은 구조조정 끝에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되는 수모를 겪게 됐다.
◆맨손 전설에서 시작한 국내 해운사
양대 해운사 시작은 비슷하다. 모두 창업주 ‘맨손 신화’에서 탄생했다.
1977년 설립된 한진해운 역사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손수 일군 회사다. 조 창업주는 1945년 인천 해안동에서 트럭 한대로 ‘한진상사’를 열고 수송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의 수송 사업 중심엔 항상 한진해운이 있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수송 사업을 하던 중 해운업에서 신성장 동력을 발견했고 1967년 한진해운 전신인 대진해운을 세웠다. 대진해운은 1972년 컨테이너선 ‘인왕호’를 한·일 항로에 투입해 국내 첫 컨테이너 운항 선박회사로 이름을 남겼다.
현대상선도 비슷하다. 1976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버려진 유조선 3척을 도입해 맨 바닥에서 현대상선 전신인 아세아상선을 일궜다.
한진해운 전신인 대진해운은 1973년 1차 오일쇼크를 이겨내지 못하고 해체됐다. 조 창업주는 대진해운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1977년 한진해운을 세우며 다시 ‘해운왕’ 꿈에 도전했다.
1988년에는 경영난에 빠진 대한선주를 합병해 우량 기업으로 키워 도약기를 맞았다. 대한해운공사를 모태로 한 대한선주는 정부가 1949년 출범시킨 기업으로 한진해운은 국내 첫 국적 해운사 정통성 계보를 이었다.
1992년에는 국적 선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1995년에는 거양해운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났다. 2002년 조 창업주가 타계한 뒤에는 3남인 고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을 독자 경영했다.
◆오너 리스크·전략 부재에 해운불황 파고 못넘어
한진해운은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지병으로 별세하며 위기가 찾아왔다. 조 회장의 부인 최은영 회장이 대신 키를 쥐었지만 중장기 전략 부재에 업황 불황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해운운임이 본격적으로 떨어져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한진해운의 부실은 점점 커졌다. 2014년 최회장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백기를 들수 밖에 없었다.
최회장의 시숙이자 한진가 장남인 조양호 회장이 고심 끝에 구원투수로 나서 2014년 회사를 인수, 경영 정상화에 나섰다. 대한항공을 필두로 계열사를 총 동원해 1조 7000억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자력 회생에는 역부족이었다.
현대상선도 글로벌 운임 치킨게임을 이기지 못하고 올해 한진해운과 나란히 구조조정 도마에 올랐다.
조양호 회장은 5월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경영권 포기 각서를 썼고 25일 5600억원 어치 자금조달 방안을 담은 자구안을 짜냈지만 채권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끝내 법정관리행이라는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됐다.
한진 고위 관계자는 “조 회장이 소년 시절부터 ‘해운왕’을 꿈꾸며 한진해운을 세운 창업주 뜻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양대 해운사 몰락으로 한국 해운사는 몇단계 뒤로 후퇴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양창호 인천대 글로벌 물류대학원 교수는 “1개 원양 노선 서비스를 구축하는데만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투자가 필요하다”며 “법정관리 이후에는 국가가 아무리 돈을 들여도 몇십년내 한진해운 같은 기업을 다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정환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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