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한다고 나서니 국제적으로 한국 해운사 평판이 나빠졌습니다. 문제가 없는 다른 해운사마저도 점점 배를 빌리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중견선사 대표 A씨)
1년에 한번 국내 해운인들이 모이는 한국선주협회 사장단 연찬회는 그야말로 하소연으로 가득찬 성토장이었다. 지난 17일 한국선주협회가 경기도 양평 현대 블룸비스타에서 개최한 ‘2016 사장단 연찬회’에선 해운사 CEO, 정부·금융권 관계자 등 120여명이 참가했다. 2002년부터 매년 정례적으로 개최된 사장단 연찬회는 2014년 세월호 사고와 2015년 메르스 확산으로 중단된 후 3년만에 개최됐다.
사장단 연찬회는 평소 서로 얼굴 보기 힘든 해운인들을 위한 ‘만남의 장’이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해운업계가 장기불황에 빠진데다 맏형 격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기업 생사의 기로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국내 1위선사인 한진해운에선 단 한명도 참가하지 않았고, 현대상선 역시 모기업 연수원에서 연찬회가 열렸지만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중소선사 임원 B씨는 “연찬회는 매년 1박 2일로 개최돼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고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해운인들과도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그런데 올해는 최근 해운업계 분위기를 감안해 하루 일정으로 진행돼 교류는 커녕 회의할 시간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찬회의 화두는 단연 ‘구조조정’이었다. 한국 해운사를 이끄는 양대 축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유동성 문제로 법정관리 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다른 해운사들에게 미치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이윤재 한국선주협회 회장은 “정부는 지난 6월 8일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확정짓고 해운에 대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다”며 “국적 원양선사를 외면하고 외국선사에게 화물을 몰아주는 국내 대형화주들의 이탈현상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어 “양대 국적선사 구조조정이 마치 한국 해운이 침몰직전에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 대외 신인도도 크게 저하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협회 회원사 151개사 중 114개사는 영업이익을 시현했고, 37개사만 적자를 기록했다. 또한 구조조정 중이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회원사를 제외한 158개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 9000억원, 당기 순이익은 6000억원에 달했다. 즉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를 한국 해운업 전체의 위기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해운업계의 목소리다.
중견선사 부사장 C씨는 “해운업이 리스크업종으로 치부되면서 금융권에선 신규거래 개설 불가와 대출금 조기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 사업형태가 달라서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금융권에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이번 연찬회에 참석한 대내외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을 찾는데 집중했다. 참가자들은 국내 해운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한국해양보증보험 출자 대책과 해운물류시장 질서확립 방안, 대량화주 상생협력 업무협약(MOU) 체결, 부산신항 내 아시아 해역(인트라 아시아) 전용부두 확보 방안, 해군 제대군인 선원 양성제도 도입 방안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한편 정부는 당초 이달로 설정한 현대상선의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 가입 시한을 다음달로 늦출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은 이날 연찬회에 참석해 기자들과 만나 “(현대상선 해운동맹 가입은) 이번달이 될 수도 있고 다음달이 될 수도 있다”며 추가 시간을 부여할 수 있음을 밝혔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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