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상태라면 빠르면 5년 안에 한국 면세 기업은 세계 10위권에서 이름이 사라질 겁니다. 5년 시한부 제도가 수정되지 않는다면 지금 특허권을 잃은 롯데면세점 뿐 아니라 신라면세점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글로벌 면세 전문가인 더못 데빗 사장이 한국 면세산업에 ‘경고’를 내렸다. 더못 데빗 사장은 글로벌 면세·관광 전문지 ‘무디리포트’의 총괄 사장겸 편집인이다. 그는 마틴 무디 무디리포트 회장과 더불어 20여년 이상 면세 사업 전반을 분석해 온 세계적인 면세전문가 중 1명이다. 지난 3일 오후 매일경제신문사는 최근 방한한 더못 데빗 사장을 그가 묵고있는 소공동 롯데호텔 1층 라운지에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데빗 사장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같은 전염병이나 대지진 같은 천재지변이나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친 것이 아닌데 오로지 규제로 인해 굴지의 면세점들(워커힐 면세점,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문을 닫는 경우는 면세산업 역사상 손에 꼽을 만큼 ‘쇼킹’한 사건”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한국 관광 활성화는 사실 30년 이상 ‘쇼핑관광’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온 면세점의 공이 매우 크다”며 “한국 정부가 눈 앞의 명분만 내세우다 더 큰 것(관광산업 전반)을 잃을까 걱정된다”고도 덧붙였다.
명품 업체들의 싸늘한 시선도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그는 “주요 명품 업체들은 5년 만에 수천억원의 돈을 투자하고 입지를 다져놓은 기업들이 불공정하게 문을 닫는 광경을 목격한 데다, 그로 인해 실제 매장을 닫을 처지에도 놓이며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며 “늘 ‘최고의 환경’에 노출되고 싶어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5년짜리 매장을 열려고 오랜시간(평균 8개월)을 들여 입점 검토를 하려고 하기에는 어렵지 않겠냐”고 말했다.
데빗 사장은 지난 1999년 EU 출범 당시 규제로 인해 유럽 내 면세·관광사업 전반이 타격을 입었던 전례를 한국정부가 반면교사 삼아야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표결을 통해 유럽연합 회원국가 국적의 여행객들이 역내를 여행할 경우 면세품을 살수 없게끔 하는 제도를 통과시켰다. 가령 프랑스인이 독일을 여행할 때는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제도를 통과시키기 전 EU 가입국가들은 관광활성화와 면세·여행산업 보호라는 ‘실리’와 단일 통화·단일 시장이라는 ‘명분’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당시 영국, 독일,프랑스, 오스트리아, 그리스 등을 포함해 EU 15개 가입 국가 중 14개 국가는 면세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제도 시행을 보류하자고 주장했지만 오로지 덴마크 한개 국가가 반대표를 던졌다. 단일시장이라는 명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역내 면세산업은 폐지돼어야한다는 게 덴마크의 주장이었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만장일치제’를 기본으로 하는 EU는 결국 제도를 시행했고 결과는 참담했다. 데빗 사장은 “순식간에 면세업에 종사하던 많은 사람들은 직장을 잃었고 관련 브랜드들도 무너져내렸다”며 “뿐만 아니라 EU 국가간 일일 관광객 수치가 절반 이하로 급감했으며 유럽 내 국가들을 오가는 페리 내 면세점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99년 BBC의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조치로 EU 전체에서는 10만명, 영국에서만 3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데빗 사장은 “유럽은 ‘쇼핑’이 관광의 주 목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국가의 고집으로 인해 면세 사업 뿐 아니라 관광 산업 전반이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며 “쇼핑에 집중되어있는 한국의 관광산업은 면세산업이 흔들릴 경우 어떤 후폭풍을 미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나마도 아직 한국 정부는 제도를 손 볼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는 상태라 다행”이라며 “한국 면세점들은 최근까지도 전 세계 면세점 산업 내에서 가장 전문성이 뛰어난 기업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고, 한류 마케팅과 토산품 비중 강화 등을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좋은 창구라는 사실을 감안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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