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김지민 씨(26)는 얼마전 페이스북을 탈퇴했다. 하반기 공채 취업 성공을 자랑하는 주변인들 게시글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 권유로 ‘힐링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시작했다. 2년째 취업준비에 성과가 없는 사정을 익명으로 올리자 공감과 위로의 댓글이 달렸다. 공부하기 힘들 때 먹으라며 간식거리가 담긴 도서관 사물함 주소를 알려주는 이도 있었다.
학업과 취업 준비로 지친 청춘들이 기존 SNS를 외면하고 있다. 자극적이고 자기 과시형 글이 많아 부담될 때가 많아서다. 최근 2030세대 사이엔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유명 SNS 앞 글자를 딴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청춘들은 고민상담과 위로를 추구하는 ‘힐링형 SNS’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어라운드’와 ‘모씨(MOCI)’라는 곳이 일명 ‘힐링형 SNS’다. 서비스 1년 만에 입소문을 타고 각각 90만, 200만 이용자를 돌파하며 새로운 SNS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어라운드를 만든 유신상 콘버스 대표는 “지난해 6월 36만명에서 올해 1월 90만명을 돌파할 때까지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며 “따뜻한 소통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수요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기존 SNS와의 차이점은 철저한 블라인드(이용 금지) 제도다. 두 SNS는 어떤 형태로든 광고형 게시글을 금지하고 있다. 또 폭력적이거나 비속어가 포함된 게시글을 올려도 바로 블라인드 처리가 된다.
힐링형 SNS에서 시작된 ‘달콤창고 문화’도 청춘들을 위로하는 오프라인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달콤창고는 지하철이나 도서관 사물함을 이용한 간식거리 공유 보관함이다. 한 익명 사용자가 ‘서로를 응원해주자’며 지하철역 사물함에 초콜릿을 넣고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서울 강남역사 사물함에서 시작된 이 문화는 현재 중·고교 대학 사물함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확산되고 있다. 강원대와 여수 시립도서관까지 퍼져나갔다. 이 캠페인을 통해 현재까지 전국 100여 곳에 달콤창고가 만들어졌다. 합정역 달콤창고 앞에서 만난 오재우 씨(26)는 “간식과 함께 누군가가 준 응원메시지를 읽으면 힘이 된다”며 “익명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이런 문화가 만들어지고 확산된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벤처 투자업계도 SNS에 퍼진 따뜻한 바람에 주목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지난해 ‘어라운드’ 개발사 콘버스에 20억원을 투자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상호 배려하며 공감하는 존중의 문화에 주목했다”며 “SNS를 통한 소통 방식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김석호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돼 뒷사람 커피값을 미리 내주는 ‘미리내 운동’처럼, 달콤창고 문화도 성숙한 시민의식 형태라고 생각한다”며 “가장 외롭고 고단한 세대인 청년들의 유대감을 모으며 SNS 순기능이 발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덧붙여 “힐링형 SNS가 청년들이 대세가 됐다는 건 구조적 현실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라며 “SNS서 서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는 청춘들의 현실에 사회가 부채감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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